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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하영 칼럼

[취재수첩] 재현된 KT 장애, ‘재발방지’는 공수표였나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악몽이 재현됐다. 지난 24일 오전 KT망이 1시간 넘게 마비됐다. 유·무선 통신 장애로 대한민국 일상이 멈췄다. 2018년 KT 아현국사 화재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전국구 규모다. 기업·학교는 물론 소상공인들까지 막심한 경제적 피해가 예상된다.

장애 원인도 뚜렷하지 않다. KT는 처음에 디도스 공격을 의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인재(人災)였던 모양이다. 면밀히 확인한 결과, 라우팅 즉 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였다는 게 KT의 설명이다. 하지만 애당초 왜 디도스로 판단했는지, 통상 한밤중에 하는 라우터 설정 변경을 왜 오전에 했는지, KT와 정부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사실 원인이 무엇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KT와 정부의 대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임혜숙, 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 KT 아현국사 화재 당시 재발방지를 위해 ‘통신재난방지대책’을 발표했었다. “특정 통신사의 통신망이 마비되면 다른 통신사를 이용해 통신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게 하겠다”는 ‘재난로밍 서비스’가 핵심이었다.

정부가 그때 만든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면 이번 사태는 충분히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재난로밍 서비스는 작동되지 않았고, KT와 정부는 우왕좌왕 했다. 그러는 사이 전국 곳곳에선 비대면 회의와 강의가 멈췄고, 식당들의 결제 포스(POS)가 멈췄고, 1분1초로 갈리는 주식 시장마저 멈췄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당시 정부가 통신3사와 직접 구축해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던 재난로밍 서비스가 이번에는 작동되지 않은 것에 대해 “당시의 재난로밍 서비스는 네트워크 엣지(가장자리) 부분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대책이었기 때문에, 코어 네트워크까지 번진 이번 문제에 대해선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해되지 않는 해명이다. 네트워크의 어느 부분에서 장애가 발생하든 정부와 기업은 대응을 해야 했다. 아현 화재 당시 마련한 대책조차 결국은 미봉책이었던 셈이다. 임 장관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코어 네트워크에 대한 사고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전형이다.

살펴보니, 재난로밍 서비스를 비롯한 통신재난방지대책이 담긴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은 심지어 시행일이 오는 12월9일이었다. 지난 6월 국무회의를 통해 공표되긴 했지만 아직 발효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아현국사 화재가 벌어진 지 벌써 3년째이지만, 정부의 재발방지책 속도는 거북이 걸음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통신 장애 사고 직전 구현모 KT 대표는 신규 인공지능(AI) 사업 전략을 발표했다. 연간 3조원 규모로 성장이 전망되는 국내 컨택센터(AICC)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관련 서비스를 강화해나가겠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사태 이후, “본업이나 잘하자”는 비아냥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실수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벌써 두 번의 아웃이 카운트 됐다. 세 번의 기회는 없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통신망 의존도가 더 커진 요즘, KT는 물론 통신3사는 더욱 철저히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KT는 이번 사고로 인한 보상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재발 방지와 함께 슬기롭게 사태를 수습하는 책임감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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