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비트코인 캐시, 에이다…’ 요즘 잘 나간다는 암호화폐(暗號貨幣, Cryptocurrency) 덕분에 관련 시장이 뜨겁다. 경제가 전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당분간 이슈의 중심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반도체 업계도 암호화폐 ‘덕’을 보고 있다.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물론이고 D램이나 낸드플래시 수요가 의미 있는 수치를 기록했다. 애초 예상치 못했던 수요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아예 전용 주문형반도체(ASIC)까지 만들어 팔 정도다.
여기까지만 보면 암호화폐는 관련 시장의 자양분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불안요소도 만만치 않다. 단순히 암호화폐 시장이 사그라질 우려 때문이 아니다. 과거 반도체는 새로운 운영체제(OS)가 선보이거나 확실한 수요가 있을 때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 지금의 호황은 공급부족까지 곁들여진 상황이라 그 정도가 더할 뿐이다.
다만, 컴퓨팅 성능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수요 성장세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PC 시장의 반도체 수요가 줄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OS가 출시되면 그만큼 CPU나 D램을 더 샀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텀(Term)’이 길어진 것이다.
예컨대 암호화폐의 얼굴마담인 비트코인의 경우 웬만한 CPU, GPU 병렬컴퓨팅으로는 채굴이 어려워졌다. 이미 PC로는 10년 이상 돌려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상태다. ASIC,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를 활용한 전용 채굴기가 등장한 계기다. 채굴 난도가 빠르게 높아지는데 효율은 떨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암호화폐에 따라 사용하는 알고리즘 차이로 인해 섣불리 컴퓨팅 성능에 대한 수요를 예측하기란 무척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암호화폐에 투입되는 컴퓨팅 자원이 의료나 의약과 같은 곳에 쓰였다면 더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PC 성능의 발전을 항공산업에 대입했을 때 서울에서 뉴욕까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날아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돌아와서, 암호화폐가 당장은 반도체 업계에 큰 이득을 주고 있지만 어떤 형태든 성장에 한계는 존재한다. 과거 닷컴버블로 인해 엄청난 수의 서버가 판매됐으나 불과 몇 년 만에 이들 제품의 가격이 곤두박질쳤던 기억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2억원에 육박했던 서버를 200만원, 1억원짜리 워크스테이션을 100만원에 팔았던 기억이 있다.
하드웨어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전부터 그랬지만 시장의 일정한 흐름 속에서 고점과 저점이 언제 발생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비아냥은 피해야 할 것 아닌가.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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