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전통적 방송 중심 미디어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국내에도 본격 도입됐다. 넷플릭스가 한국시장에 올 한 해에만 5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한국은 OTT 플랫폼과 콘텐츠 양 측면에서 매력적인 시장으로 부각됐다.
동시에, 코로나19가 OTT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OTT 이용자는 급증했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토종 OTT가 속속 등장하고,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 등 주요 글로벌 OTT의 한국시장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대한민국 OTT 춘추전국시대가 개화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OTT는 넷플릭스다. 2016년 한국에 진입한 넷플릭스는 2018년 LG유플러스, 2020년 KT와 협력하며 국내시장에서 자리를 공고히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유료 구독 가구 수는 380만이다.
다만, 넷플릭스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콘텐츠 제작이 지연되면서 ‘킹덤’ ‘스위트홈’과 같은 대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용자 수 감소를 겪게 됐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지난달 넷플릭스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808만3501명으로, 전월 823만6288명보다 15만2787명 감소했다. 넷플릭스는 지난 1월 899만3785명으로 최고 기록을 세운 후 3개월 연속 줄어들고 있다.
이는 볼거리 부재뿐 아니라, OTT 경쟁구도 심화 결과로도 해석 가능하다. 넷플릭스와 달리 웨이브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넷플릭스에 대항하는 국내 OTT는 웨이브, 티빙, 시즌, 왓챠, 쿠팡플레이 등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SK텔레콤과 지상파3사 합작으로 탄생한 웨이브는 국내 OTT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1월 MAU는 371만3427만명이었으나 2월 331만명대로 감소했다가, 3월과 4월 두 달 연속 370만명에 육박하며 성장세를 되찾았다. 2월에는 성인물 노출 사건도 겹쳐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웨이브는 드라마 ‘펜트하우스’ 흥행 후 최근 오리지널 콘텐츠 ‘모범택시’까지 승승장구 중이다. 5주째 1위를 차지한 모범택시 시청시간은 전주대비 12% 증가해 펜트하우스 시즌2에 달하는 기록을 세웠다.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력을 확인한 웨이브는 승부수를 던졌다. 2019년 출범 당시 2023년까지 3000억원 규모 제작 투자를 약속한 웨이브는 2025년 총 1조원 규모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모범택시도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다. 또, ‘미생’ ‘도깨비’ ‘시그널’ ‘비밀의 숲’ 내로라하는 드라마를 성공시킨 이찬호 전 스튜디오드래곤 CP를 콘텐츠전략본부장(CCO)으로 선임했다. 이를 통해 웨이브가 추진 중인 기획 스튜디오 설립에도 속도가 붙을 예정이다.
JTBC와 손잡은 CJ ENM 티빙은 3위에 올랐다. tvN을 비롯한 35개 실시간 TV채널과 6만여편 국내외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티빙은 콘텐츠 역량에서 우수하다. CJ ENM과 JTBC는 지상파를 제치고 경쟁력을 입증한 곳인 만큼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상당하다. 티빙은 4월 MAU는 약 293만명이다. 티빙은 ‘빈센조’ ‘경이로운소문’ 등 히트작을 내놓기도 했다. 티빙은 향후 3년간 약 4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KT도 미디어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KT 스튜디오지니를 필두로 미디어‧콘텐츠 계열사 간 시너지를 꾀하고 있다. 특히, KT OTT 시즌은 별도 자회사로 독립한다. 최근 지니뮤직은 최대주주 KT가 보유한 지분을 현물 출자해 KT 시즌을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KT는 콘텐츠 투자에 4000억원 이상 투입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LG유플러스 모바일TV, 왓챠, 쿠팡플레이 등이 국내 OTT 시장에 겨루고 있다.
코로나19 특수가 줄어들면서 넷플릭스가 약진했음에도, 웨이브와 티빙 등 국내 OTT가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내 콘텐츠 힘이다. 넷플릭스와 달리 웨이브와 티빙은 지상파, CJ ENM, JTBC, 종편 등 국내 가입자가 즐기는 주요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며 가입자를 지켰다. 넷플릭스 콘텐츠 부재와 다른 양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글로벌 OTT의 한국진출이 가시화된다. 디즈니 OTT ‘디즈니플러스’는 연내 국내 서비스할 예정이다. 전세계 가입자 1억명을 빠르게 돌파한 디즈니플러스는 막강한 지적재산권(IP)을 무기로 삼고 있다. 월드디즈니컴퍼니는 마블, 픽사,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최근 디즈니플러스에서 마블 오리지널 시리즈 ‘완다 비전’ ‘더팔콘과 윈터솔저’를 공개하기도 했다. 국내 마블팬도 상당해 디즈니플러스 대기수요가 점쳐진다. 키즈부터 전 연령대가 흡수할 수 있는 다양한 IP는 장점으로 꼽힌다.
이 같은 대어 등장에 국내 통신사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가입자 끌어모으기에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KT와 LG유플러스는 디즈니플러스 제휴 유력 후보로 꼽힌다. 애플TV플러스도 올해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감돈다. SK텔레콤이 애플TV플러스, 아마존프라임과의 협력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한편, 글로벌 OTT가 한국시장에 속속 상륙하면서 국내 OTT업계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형 해외 OTT가 한국시장에 진출해 토종 OTT 사업자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내 양질의 콘텐츠 수출 수혜를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한국이 글로벌 OTT를 위한 콘텐츠 생산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 글로벌 OTT로 콘텐츠로 공급해 전세계에 수출되는 경우, 국내 콘텐츠 우수성은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지만 이익을 함께 나누기는 어렵다. 제작비를 보전할 수 있는 가격으로 해외수출을 포함한 판권을 해외 OTT가 차지하는 현 계약구조 때문이다. 이 경우, 국내 제작사는 제작 하청기지나 다름없게 된다. 콘텐츠 생태계가 잘못 형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토종OTT가 연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OTT 시장이 커지는 것은 좋지만, 과실을 해외 사업자에게 넘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SK텔레콤은 K-OTT를 키우자며 티빙에게 구애하기도 했다. 다만, OTT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어, 통합론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