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현재까지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논란은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국민은행 이건호 행장간의 파워게임이란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과연 갈등사태는 봉합될 수 있을까.
일단은 KB금융 내부적으로 수습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수순을 밟을 것이란 예상이 다소 우세하다. 세월호 참사와 6.4지방선거 이슈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태전개에 대한 시장의 비판적 여론이 비등하고 있기때문이다.
특히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관피아’끼리의 힘겨루기라는 여론의 따가운 질책, 그리고 최근에는 리베이트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이번 사태와 연관이 있는 당사자들에 대한 계좌추적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또한 국민은행 노조도 최근 당사자들의 동반 퇴진을 요구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이와 함께 오는 30일 예정된 국민은행 임시 이사회에서 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해, 국민은행 감사위원회 소속 사외이사들이 당초 정병기 감사가 제기한 감사의견을 듣기로 결정했다. 당초 사외이사들은 감사의견 자체를 보고받지 않겠다고 했던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나아가 감사결과가 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감사위원회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알려지면서 출구전략에 대한 공감대가 양측간에 형성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IBM의 행보, 왜 미스터리인가 = KB금융내 최고 경영자간의 파워게임이란 시각을 별개로 하고, 이번 사태에서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IBM의 행보이다.
“전통적으로 IBM은 고객사의 의사결정을 존중한다.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이는 그동안 한국시장에서 IBM이 암묵적으로 강조해왔던 모토다. 고객사가 자사의 IBM 메인프레임을 버리고 유닉스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고객의 결정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는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지난 10여년간 국내 금융권에서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동안 주전산시스템이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전환되는 몇 번의 사례가 있었지만 전산시스템 교체에 따른 ‘잡음’(?)은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IBM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관행을 봤을 때, 대표가 고객사 최고경영자에게 레터를 보낸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사태’는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는 금융업계 IT실무자들에게는 다소 충격이다.
국민은행 IT부서 관계자들은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아끼고 있지만 IBM에 대한 불쾌감을 어렵지않게 느낄 수 있다. 유닉스 전환 프로젝트가 시행되는 시점에서 IBM이 의도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19일 KB금융지주측은 ‘KB금융 내분’과 관련한 해명 보도 자료를 내면서 KB금융지주 김재열 전무(CIO)의 의견을 공개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14일 한국IBM 대표(셜리 위 추이)가 보낸 사적인 이메일을 받은 은행 경영진이 공식 절차없이 관련 메일 내용을 근거로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 이번 해프닝의 시발’이란 것.
물론 ‘사(私)적인 이메일’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이를 계기로 이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IBM의 행보에 대한 책임론은 분명히 존재한다.
◆IBM의 절박함 혹은 고도의 전략 ? = 왜 이사회 결정시점에서 IBM이 이메일을 보냈을까를 놓고 몇가지 추론이 나온다.
가장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국민은행이 가지는 상징성이다.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은 전세계 IBM 메인프레임 고객사중 최대 고객군으로 분류된다. IBM으로서는 어떻게든 중요한 메인프레임 고객을 지켜야하는 절박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메인프레임 고객의 상실은 한국시장 매출 감소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추론은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정말 IBM이 절박했었다면 이미 2년전 국민은행이 탈 메인프레임을 선언하고 유닉스로 전환하겠다고 유닉스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시작했을 당시부터 IBM이 적극적으로 움직였어야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IBM의 고도의 전략적 결정이었다는 추론이다. IBM의 전략에 국민은행이 너무 손쉽게 당했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2년전부터 유닉스 전환 프로젝트를 고려하면서도 한편으론 IBM과의 전산구매계약 갱신 조건에 답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뚜렷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국민은행과 IBM간의 전산구매 및 도입계약은 지난 2009년부터 오는 2015년 6월까지 모두 7년간이다.
국민은행측은 계약 갱신시점에 앞서 IBM이 높은 가격을 요구할 것에 대비해 사전가격 협상을 요구했다. 답변이 늦어지자 마지막 대응수단으로 올해 유닉스 시스템 전환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은행만 너무 자신의 패를 노출시켰고 정작 IBM의 패는 읽지못하는 전략상의 미스를 지적하는 시각도 없지않다. 1년여의 빠듯한 시간에 주전산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은 성공여부를 떠나 국민은행에게는 그 자체로 엄청난 부담일 수 밖에 없다. IBM은 이 시점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닉스 전환을 위한 사업자 입찰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는 있지만 현재로선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간의 내부 갈등이 완전히 없던 일로 정리되지 않는 한 유닉스 전환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IBM의 전략은 성공한 듯 보인다.
다른 한편으론 다분히 음모론적인 시각이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다.
아무리 한국IBM 대표 명의로 보내진 이메일이라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은행측에서 내부적으로 2년여 동안 공개적으로 진행돼왔던 IT프로젝트를 전격적으로 중단 및 보류시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은행권 IT실무자들의 분석이다.
정말 IBM이 이메일에서 밝힌대로 기술적으로, 비용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전산시스템 교체 프로제트를 위한 사업자 입찰까지 가는 과정에서 이미 수없이 문제제기가 됐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국면은행 전산시스템 전환, 가능할까 = 이제 금융 IT업계의 관심사는 지금까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은행 주전산시스템 변경 작업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문제로 쏠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러 정황을 고려해볼 때 프로젝트 추진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금융 당국의 특별감사가 예정대로 진행돼야하고 이 결과가 어느 정도 나와야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돌발 상황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아야한다.
또한 30일 임시 이사회를 지켜봐야겠지만 KB금융 경영진 내부의 갈등구조가 완전히 봉합돼야하는 것을 전제해야한다.
물론 갈등이 봉합된다는 것은 누군가는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역시 쉽지않은 전개 과정이다. 만약 정병기 감사의 감사의견대로 주전산시스템 변경에 따른 의사결정과정에서 하자가 발견된다면 당연히 프로젝트는 수정 또는 보류될 가능성이 높다.
그 반대의 상황, 즉 문제점을 지적했던 감사보고서가 결과적으로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역시 누군가는 그에 상응하는 도의적 책임을 져야한다. 그리고 이 경우 분란의 단초를 제공한 IBM도 난처해질 수 밖에 없다.
한편 이같은 정치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견해가 엇갈린다.
프로젝트를 예정된 기간내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결국은 시스템 전환이 완결될때까지는 한시적으로 기존 IBM 메인프레임 체제를 유지해야한다. 이번 사태로 프로젝트 착수 시기가 늦어졌기 때문에 현재로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이 경우 국민은행은 기존 전산장비구매 계약인 OIO계약 방식보다 약 3배 정도 비싼 수준의 비용을 IBM측에 지불해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지거나 프로젝트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국민은행은 결국 IBM과 5~7년간의 일정으로 다시 OIO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가능성이 크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다면 프로젝트 착수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현재로선 이 시나리오가 사실 국민은행 IT실무자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이다.
반면 유닉스 전환이 일정보다 몇 개월간 다소 늦어지더라도 국민은행이 유닉스 전환 성공에 확신이 선다면 프로젝트를 강행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수차례의 기술적인 검토가 충분히 있었고, 리호스팅 기술이 이미 10년전부터 시도된 것이라는 점, 그리고 난이도가 그렇제 높지 않다는 점에서‘외부의 정치적 변수’만 배제된다면 프로젝트 추진에 큰 부담이 없다는 견해도 적지않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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