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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규제’ 논란 귀닫은 국회…‘문화산업 공정유통법’ 뭐길래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문화산업 내 불공정계약을 막겠다는 취지로 일명 ‘검정고무신방지법’이라고도 불리는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하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중복 규제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6일 국회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는 지난달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문화산업공정유통법(대안)을 조건부 합의로 통과시켰다. 상임위 문턱을 넘은 해당 법안은 추후 법제심사소위원회와 국회 본회의를 거쳐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금지행위 유형을 구체적으로 정한 것이 핵심으로, 콘텐츠 분야 국정과제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검정고무신’ 저작권 관련 법적 분쟁 중 별세한 고(故) 이우영 작가의 사례와 같이 뿌리박힌 문화산업 분야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중복 규제 가능성이다. 이 법안에서 ‘문화산업’에 대한 정의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2조 제1호에 근간을 두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영화·비디오물과 관련된 산업 ▲음악·게임과 관련된 산업 ▲출판·인쇄·정기간행물과 관련된 산업 ▲방송영상물과 관련된 산업 등이 포함된다. 또한 법 적용 대상으로서 ▲문화상품제작업자 ▲문화상품유통업자 등을 명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방송영상물과 관련된 산업’에서 ‘문화상품(콘텐츠)을 제작·유통하는 사업자’, 즉 방송·OTT 사업자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들 사업자는 이미 방송법과 IPTV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에 의거해 다양한 금지행위 규제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사업자들 사이에서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또 다른 규제로서 작용할까 우려가 커진다. 중복 규제, 과잉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정한 금지행위는 ‘정당한 이유 없이 ▲문화상품 제작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문화상품의 수령 또는 판매를 거부하는 행위 ▲문화상품 납품 이후 수정·보완을 요구하면서 그 비용을 보상하지 않는 행위 ▲문화상품 관련 기술자료 및 정보 제공을 강요하는 행위 ▲자기가 제작한 문화상품을 다른 사업자의 문화상품과 차별해 취급하는 행위 ▲문화상품 제작에 통상 지급되는 대가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대가를 정하거나 공급계약에 명시된 대가를 감액하는 행위’ 등이다.

하지만 이를 보면 ‘정당한 이유 없이’ ‘현저히 낮은 수준’ 등 추상적이고 모호한 문구로 실제 규제 범위를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계약 당사자들간 분쟁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고, 그 기준에 대한 판단 주체 및 방법에 대한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문화산업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실태조사 및 분쟁조정 권한을 부여한 것도 과도하거나 중복되는 규제라는 지적이다. 방송사업자의 경우 방송통신발전기본법 및 정보통신산업진흥법에 의거해 이미 방송산업 실태조사 등을 위한 다양한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 분쟁조정도 방통위에 이미 있는 기능이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방송법과 비교했을 때 시행령에 들어가야할 내용(금지행위)이 법에 들어간 부분이 많다”며 “또한 방통위도 있는 분쟁조정 기능이 이 법에도 들어가 있는데 이것도 중복이다. 분쟁조정은 하나의 기관에서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관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도 이러한 문제 때문에 지난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법안 반대 입장을 냈다. 이 법의 금지행위는 자신들이 소관하는 기관에 적용되기 때문에 중복 규제 우려가 있으며, 방송국 외주 제작사 등에 대해 많은 금지 유형이 새롭게 포함돼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글로벌 사업자에 법 적용이 어려워 국내기업 역차별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러한 방통위의 우려는 문체위와 문체부에 의해 묵살됐다. 문체위 소속 유정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방통위는 윤석열 정부의 대국민 약속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박보균 문체부 장관도 “방통위만 의견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많은 협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문체부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을 일반법으로, 방통위 법안을 특별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법안들이 겹칠 경우 특별법을 우선 적용하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홍익표 문체위원장은 “최종 본회의 통과 전까지 정부 차원의 추가적인 합의가 있다면 법사위원장에게 다시 법안을 문체위로 회부해달라 요청하겠다”고 중재한 상황이다.

그러나 문체부와 방통위가 이 법안과 관련해 새로운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또한 문체위가 문체부 편에 서고 있는 점을 볼 때 설사 법안이 문체위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방통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안팎의 시선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부당한 서비스 거부라든지 적정한 수익 배분 거부 등 문화산업 공정유통법과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사이에 중복되는 조항들이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문체부에서도 조사할 수 있고 방통위에서도 조사할 수 있어 이중규제”라면서 “문체부와 해당 사안에 대해 협의 중이며 방통위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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