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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기차 목줄 쥔 LG엔솔… 韓日 배터리 30년, 역사적 반전 [IT클로즈업]

- 자존심 구긴 배터리 종주국…LG 의존도↑
- ‘마지막 희망’ 파나소닉은 테슬라 집중
- 日, 자동차 강대국에서 전기차 약소국으로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 ‘리튬이온배터리 종주국’ 일본을 휘어잡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인 도요타마저 구애를 보내고 있다. LG가 2차전지 분야에 뛰어든 지 약 30년 만의 쾌거다.

지난 13일 LG에너지솔루션은 일본 혼다와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JV) ‘L-H Battery Company(가칭)’를 공식 설립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다음 달 미국 오하이오주 제퍼슨빌 인근에 44억달러(약 5조5000억원)를 들여 신규 공장을 착공한다. 40기가와트시(GWh) 규모로 2025년 말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L-H Battery Company는 LG에너지솔루션의 여러 JV 중 하나에 불과할 수 있으나 리튬이온배터리 기원과 일본 자동차 산업을 톺아보면 그렇지 않다. 단순히 한국 배터리 기업과 일본 완성차업체의 첫 전략적 협력 사례를 넘어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2010년 미국 홀랜드 공장 기공식에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악수하는 모습
2010년 미국 홀랜드 공장 기공식에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악수하는 모습

◆배터리 ‘원조’를 넘어선 LG에너지솔루션

우선 현재 가장 보편화된 2차전지인 리튬이온배터리는 1985년 일본 화학자 요시노 아키라가 처음 개발한 것이다. 이를 일본 소니가 1991년 세계 최초 양산하면서 상용화했다. LG그룹은 이듬해인 1992년에서야 리튬이온배터리 연구에 착수했다. 경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LG그룹 부회장이던 고 구본무 회장이 신성장동력 발굴 차원으로 출장 방문한 영국에서 2차전지를 우연히 접한 계기로 계열사인 럭키금속이 발을 들이게 된다. 1995년 관련 연구를 LG화학으로 이전해 본격 개발에 돌입했다. 1997년 리륨이온배터리 공장 준공 및 시제품 생산했고 1999년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양산 개시했다.

2000년 들어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을 시작했고 2000년대 중반부터 일본 제품을 뛰어넘는 리튬이온배터리를 하나둘씩 내놓았다. 문제는 오랜 기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 그럼에도 LG화학은 관련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2009년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볼트’에 배터리를 독점 공급하게 됐다. 사실상 이때부터 일본 배터리를 제대로 앞질렀다.

이후 다양한 배터리 개발 및 생산을 진행했고 미국(2012년), 중국(2015년), 폴란드(2018년) 등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지를 마련하면서 해외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수년간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이슈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뒤 안정화에 성공했다.

2010년대 중후반 전방 산업이 개화하면서 LG화학 배터리 부문은 몸집이 커졌고 세계 유수의 전기차 회사들을 연이어 고객사로 맞이했다. 2019년부터 약 2년 동안 SK이노베이션과 소송전을 치르면서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해당 사업이 분사해 LG에너지솔루션이 출범했고 2022년 코스피 상장했다. 현시점에서 전 세계 20여개 고객사를 확보한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CATL과 선두다툼을 펼치고 있다.

◆日 완성차업체, 배터리 공급망 ‘비상’

LG에너지솔루션은 혼다와의 협업에 앞서 일본 고객과 거래를 튼 바 있다. 작년 닛산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리야 전기차’ 배터리를 납품한 데 이어 일본 최대 상용차업체 이스즈와 원통형 배터리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부터 공급 예정으로 조단위 규모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는 일본 1위 메이커 도요타와 배터리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상당 부분 진척되면서 업계에서는 조만간 JV 설립 등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공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해외 기업에 일본 자동차 시장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완성차업체를 중심으로 계열사 또는 자국 업체끼리만 협업하는 ‘케이레츠(계열) 문화’가 강한 영향이다. 기술력에 자부심이 있는 일본 특성상 외국 협력사에 더 배타적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LG에너지솔루션과 손을 잡는 건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일본에는 파나소닉 외 대형 배터리 제조사가 없다. 도요타의 경우 파나소닉과 JV ‘프라임플래닛에너지앤솔루션(PPES)’을 설립하는 등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파나소닉의 우선순위는 도요타가 아닌 테슬라다. 톱10 중 상대적으로 생산능력 확장 속도가 느린 편이다. 투자도 많지 않은데다 가용 물량마저 테슬라에 쏠리는 만큼 일본 전기차 몫이 많지 않은 것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여파로 중국 배터리 활용도 여의치 않다. 유럽 신생 업체들은 성과가 지지부진하고 삼성SDI, SK온은 유럽과 미국 고객 커버하기도 벅차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LG에너지솔루션 뿐이다. 물론 LG에너지솔루션은 기술적으로도 선두권이다.

참고로 글로벌 자동차 회사 톱10 중 도요타, 스즈키만 LG에너지솔루션과 동맹을 맺지 않은 상태다. 이대로면 도요타에 이어 스즈키도 손 내밀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에게도 밀리는 日 전기차

한편 일본은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이지만 전기차 시장에서는 입지가 다르다. 하이브리드, 수소차 등에 집착하면서 상대적으로 전기차 전환이 늦었던 탓이다. 도요타, 혼다, 소니 등이 부랴부랴 사업화에 나섰으나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적이지 않다.

업계에서는 일본 완성차회사들이 자국 반도체, 가전 기업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자동차 평가업체 아이씨카스닷컴 칼 브라우어 수석애널리스트는 “일본이 전기차 기술을 갖췄더라도 시행착오를 안 겪을 수 없다. 이미 다른 나라는 이를 지나 앞서가고 있다”면서 “세계 시장에서 일본 위상 저하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일본 전기차는 갈 길이 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 상위 20위 중 일본 회사는 찾아볼 수 없다. 현대차그룹은 테슬라, 포드에 이어 미국 내 3위를 기록한 데다 ‘아이오닉5’는 지난해 일본에서 ‘올해의 수입차’를 수상하기도 했다. 수입차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일본에서 거둔 성과다.

기존 내연기관차 분야에서도 점점 뒤처지면서 일본 자동차 산업 전반이 위기다. 시장조사기관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판매된 신차는 420만대로 인도(444만대)에 밀렸다. 2006년 중국에 추월을 허용한 지 16년 만에 인도(3위)에 밀리면서 4위(1위 미국·2위 중국)로 전락했다.

블룸버그는 “일본 자동차 업계가 반도체를 만들던 NEC, 워크맨을 만들던 소니의 몰락을 닮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만큼 일본의 대처가 빨라지지 않으면 산업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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