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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가짜’ 소버린AI 논란

[Ⓒ 챗GPT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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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소버린 AI’. 요즘 국내 IT 업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단어다. 인공지능(AI)에 대한 통제권과 자주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로, 특히 공공분야와 규제산업에서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용어의 정의를 놓고, 소위 ‘진짜’ 소버린 AI와 ‘가짜’ 소버린 AI를 가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네이버클라우드 김유원 대표는 최근 열린 자사 기자간담회에서 이 점을 정면으로 지적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외산 기술을 들여와 우리 것이라고 상표만 붙인 것을 소버린 AI라고 하는 건 언어도단”이라며 ‘가짜 소버린 AI’를 일갈했다. 이는 KT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공동 개발한 소버린 AI를 국내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기 때문에 파장이 더 컸다.

김 대표는 소버린 AI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자주적 의지 ▲글로벌 밸류체인 참여 ▲기술 제공자들과의 협조다. 그러니 단순히 외산 기술을 조립해 쓰는 방식으로는 ‘소버린’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네이버클라우드 역시 AI 공급망 측면에서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고 있지만, 핵심 기술의 ‘내재화’ 없이는 결코 주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KT의 기준은 다르다. KT는 얼마 전 자사 AI 및 클라우드 전략 발표에서 소버린 클라우드가 갖춰야 할 네 가지 원칙으로 ▲국내 데이터 상주 ▲국내 법규 준수 ▲데이터 전 생애주기 보호 ▲고객 자원 소유권 강화를 내세웠다. 이 원칙들을 바탕으로 KT는 곧 출시할 소버린 클라우드 서비스를 MS 애저 한국 리전 기반으로 구성하고, 소버린 랜딩존 정책을 통해 산업별 규제를 시스템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KT의 관점에서 ‘소버린’이란, 기술의 출처보다도 그 기술이 국내 법제도에 따라 통제되고 보호될 수 있는지 여부에 방점이 찍힌다. 해외 기술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데이터가 국내에 머물고, 외부 비인가자나 글로벌 클라우드서비스제공사(CSP) 운영자도 접근할 수 없으며, 사용 중 데이터까지 암호화할 수 있다면, 주권은 충분히 지켜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렇듯 네이버와 KT는 소버린 AI 혹은 소버린 클라우드의 정의를 다르게 보고 있다. 네이버는 기술 개발과 설계 단계의 내재화에 중점을 두는 반면, KT는 인프라 운영과 보안 통제의 현실적 주권에 초점을 맞춘다. 전자가 ‘기술 독립’을 중시한다면, 후자는 ‘정책 통제’와 ‘데이터 안전’에 기반한 실용 노선을 택했다.

접근은 서로 다르지만, 양측 모두 ‘소버린’이라는 가치를 향한 모색이라는 점에서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소버린(Sovereign)이란 단어가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순히 데이터가 국내에 머물고 법적 준수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 ‘AI 주권’을 의미하는가.

AI는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그릇이 아니라,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사고하고 추론하는 변화무쌍한 기술이다. 그래서 아주 미세한 조정으로도 전혀 다른 결과값이 나온다. 만약 모델의 구조와 학습 방식 또는 추론 로직에 대한 결정 권한이 외부에 있다면, 아무리 데이터가 국내에 있어도 시스템의 근본적인 판단 흐름은 외부 통제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외부 기술에 기반을 두더라도 설계·학습·운영 전반에 걸쳐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그 시스템은 실질적인 통제 구조를 갖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AI를 누가 설계하고, 누가 훈련하며, 누가 최종 결정을 통제하는가. 이것이 진정한 주권의 기준이 돼야 한다.

오늘날 ‘소버린 AI’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도 상징적인 힘을 지닌다. 국가와 기업이 기술 주권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이 표현은 공허한 수사로 머물 수도 있고 새로운 기술 패권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용어를 더욱 신중히 다루고, 나아가 끊임 없이 근본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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