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지난 10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무분별한 플랫폼 사업확장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결합 심사기준을 강화하기로 예고한 가운데,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및 인수합병(M&A)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9일 국회 스타트업연구모임 유니콘팜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공정위 M&A 심사기준 강화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칠 영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유니콘팜 대표 강훈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스타트업에게 M&A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과 중앙은행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인상)으로 유동성이 말라버린 상황에서 스타트업은 현실적으로 기업공개(IPO)보다 M&A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국내 M&A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오히려 이마저 막힐 수 있다는 우려다.
강 의원은 “미국은 IPO와 M&A로 투자를 회수하는 비율이 각각 50%, 44%로 비슷한 수준인 데 비해 국내 경우 IPO는 36.7%, M&A는 고작 0.5%에 불과하다”며 “하지만, 최근 M&A가 엑시트(Exit, 자금회수) 통로로 주목받는 시점에서 심사기준이 강화되는 것은 창업 및 벤처투자 시장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줄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김범섭 자비스앤빌런즈(삼쩜삼) 대표는 ‘스무디’와 ‘하우머치’ 인수로 스타트업 간 시너지가 발생한 사례를 소개했다. 삼쩜삼 서비스 운영사 자비스앤빌런즈 지난해 영상통화 앱 스무디를 인수했다. 스무디는 기술력을 갖췄으나, 추가 투자 지체로 인해 사업을 매각하거나 폐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삼쩜삼은 스무디를 인수해 삼쩜삼 앱 서비스를 개발했다. 올해엔 사업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알바급여 앱 ‘하우머치’를 인수해 근로자 급여 관리 기술을 접목시켰다.
김범섭 대표는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규제를 확대할 경우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폐업에 이르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공정위가 M&A 심사기준을 강화하더라도 대기업이 승자독식을 통해 스타트업을 모두 사장시키고 독과점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 M&A 심사기준 강화 배경에 주목했다. 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서비스 장애 발생 후 정부 기조가 자율규제에서 플랫폼 규제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중국은 자국 플랫폼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빅테크를 규제하지만, 한국은 국내 플랫폼 규제 강화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주 교수는 “공정위는 최근 카카오 서비스 장애를 들어 플랫폼은 비플랫폼 기업보다 기업결합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객관적 근거가 없다”며 “독점규제법상 M&A 규제 조항 자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규제 권한이 강화된다면 국내 플랫폼 산업을 비롯한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스타트업 생태계에 혼란이 올 것이다. 일자리 창출 역시 억제돼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에 부정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공정위는 M&A 심사기준 강화에 대해 전통 산업과 다른 플랫폼 산업에 맞는 중립적인 심사기준 판단 요소를 보완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신용희 공정위 기업결합과장은 “기존 산업에서 시장 집중도 판단을 따질 때 사용하는 고려 사항이 플랫폼 분야에는 적합하지 않아 어떤 요소가 최적의 요소인지 보겠다는 것”이라며 “플랫폼 기업결합이 야기하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를 고려해 심사기준을 설정하겠다”고 말했다.
플랫폼 이종(異種) 기업 M&A를 간이심사가 아닌 일반심사로 전환하는 것을 두고 심사 강화 가능성을 비판하는 일부 시선에 대해선 “일반심사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기업결합 심사의 불허로 이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또 “네이버가 웨어러블 기기 시장을 인수한 것이나 카카오가 스크린 골프 기업을 인수한 사례처럼 이들 기업 인수합병이 초기 시장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며 “플랫폼이 단순 시장 진출뿐만 아니라 기존 영역에서 소비자 데이터를 활용해 시장지배력을 전이하는 문제도 있기에 양 측면을 균형 있게 보면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