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국회에서 논의된 ‘역차별 해소 법안’이 도리어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11월2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소위를 거쳐 전체회의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도마에 올랐다.
이 법안이 국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인터넷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온라인서비스기업(부가통신사업자)들을 각종 조사 대상에 포함시켜 규제하는 실태조사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법안을 두고 “국회에서 역차별 해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법안이 통과됐지만 실태조사가 독소조항으로 작용해 도리어 국내 업체들을 잡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지난 10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 차원의 성명서가 나왔다.
인기협 측은 “2018년 국회에서 발의된 ICT관련 법안들만 70여건이 넘고 그 중 대다수가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해외기업과 토종기업들 간의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취지라 밝히고 있으나 실상을 살펴보면 인터넷 콘텐츠산업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로 채워져 있어 우려된다”고 밝혔다.
◆실태조사 자료 제출, 국내 기업들만 의무화?=법안은 실태조사를 위한 자료 제출을 의무화했다. 문제는 다국적 기업들의 경우 자료 제출을 거부해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도 없고, 혹여나 거부했다간 국정감사에 불려나가 집중포화를 맞을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실태조사를 위한 자료 제출을 의무화한 국가도 찾기가 쉽지 않다. 미국과 영국에선 외부 기관 자료를 활용하고 일본에선 설문조사를 통해 실태를 파악한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기존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의 자료를 활용했지만, 이번 법안에선 국내 기업에만 적용될 수 있는 자료 제출의 부담을 지웠다.
일각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촉 가능성도 제기된다. FTA 조항에 서비스요율 등을 공개할 수 없도록 해놨지만, 실태조사를 위한 자료 제출 내용에 포함될 수 있어서다. 물론 이 경우 다국적 기업이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돼 통상 마찰로 번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 입장에선 정보 공개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집행력 확보 없는 ‘역외규정’ 효과있나=법안은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라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 현행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역외규정이 제대로 작동될지 여부에 의구심이 제기된다. 상대국과의 협의가 전제되지 않은 까닭이다.
공정거래법의 경우 반독점 행위에 대한 양국 간의 합의가 이뤄져 법 집행 시 타 국가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이러한 협의가 없이 법조항 신설을 예정됐다. ‘우물 안 개구리’ 법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업계에선 “법안에 역외조항을 넣더라도 상대 국가에서도 통용이 돼야 한다”며 “국외에선 온라인서비스업체를 부가통신사업자로 규정하고 규제하려는 법 자체가 없다”고 현황을 전했다.
이 때문에 시행령 마련 단계에서 법안 본래 취지대로 역차별을 최소화하고 다국적 기업에 효과적인 집행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교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인기협 측은 성명서를 통해 “집행권이 보장되지 않는 규제 법안은 결국 오롯이 국내 IT기업만 옥죄일 수밖에 없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