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 이상일기자] 교보생명이 차세대시스템 우선협상대상자인 SK(주) C&C(이하 SK)에 협상 결렬을 통보한 것을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협상 결렬 원인을 놓고 교보생명과 SK가 상반된 주장을 내는 등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다.
국내 금융권 대형 IT사업을 보면,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가 물론 종종 있지만 이번처럼 우선협상대상자가 법원에 가처분소송까지 제기하면서 발주자측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IT서비스업체의 입장에선 발주처와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가급적 충돌을 피하는 게 보통이다. 추후 사업을 위해서는 시장에서의 평판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K측은 ‘비록 이번 프로젝트를 날리더라도 반드시 명예회복은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교보생명이 협상결렬의 이유로 ‘SK의 기술력 미흡’을 거론한 것을 용납할 수 없으며, 소송을 통해서라도 협상결렬의 진짜 원인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향후 4~5년간 금융권 2기 차세대시장을 놓고 LG CNS와 금융IT시장에서 계속 붙게될 SK측 입장에선 협상 결렬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교보생명의 주장을 인정해버리는 결과가 되고, 이는 두고 두고 족쇄가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명예가 걸린 문제” 강경한 SK = 앞서 SK측은 “교보생명측이 제안요청서(RFP)에 MDD(모델기반개발)와 관련한 개발방법론에 언급이 별도로 없다가 우선협상 진행 과정에서 뜬금없이 경쟁사인 LG CNS가 적용하고 있는 MDD방식에 대한 요구가 나왔으며, 이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조건이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이를 빌미로 우선협상을 결렬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발주사의 ‘갑질’이라는 게 SK측의 주장이다.
또 SK측은 교보생명과 LG CNS간의 사전 교감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경쟁사인 LG CNS가 우선협상대상자 경쟁에서 탈락하고도 관련 프로젝트 조직을 해산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사전 교감 의혹은 협상 결렬에 따른 감성적인 반응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SK와 교보생명 그룹과의 악연이 또 한번 재연됐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않다.
앞서 SK측은 지난 2010년 교보증권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당시에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우여곡절끝에 협상이 결렬되고 LG CNS에 사업을 내준 경험이 있다.
SK 입장에선 이처럼 교보생명 그룹 IT사업에서 악연이 되풀이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서도 특정인이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술미흡 판단” 교보생명의 주장 = 물론 이미 여러 언론 매체들을 통해 밝힌 것처럼 교보생명은 SK측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교보생명은 SK가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개발방법 중 개발소스 자동생성 등의 기술이 적용됐으면 하고 이를 (SK측에) 요구한 것은 맞지만 LG CNS의 MDD를 요구한 적은 없다”며 “SK에 관련 기술을 적용해 줄 것과 안 된다면 대안을 찾아봐달라고 요구했지만 이에 답변을 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사업이 2500억원 규모의 대형사업이고 교보생명이 장기간 사용하는 시스템인 만큼 개발에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SK에 기술 대응이 어려우면 개발자를 추가로 투입해달라고 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교보생명 제안요청서(RFP)가 논란 판단의 열쇠...내용 살펴보니 = 양측 공방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 <본지>는 지난해 11월 초, 교보생명이 금융IT업계를 대상으로 배포했던 제안요청서(RFP)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당시 제안요청서 ‘6.2 개발방법’ 항목 부문에서, 교보생명측은 입찰에 참여한 IT서비스업체들에게 상세한 개발방법론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다만 제안요청서상에서는 MDD 등 특정 개발방법론 모델이 별도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교보생명은 ‘프로젝트 개발방법론 설계 및 상세 정의’ 항목과 관련, ▲국내외 보험사및 금융권 구축사례에 기반한 최적의 개발방법론 제시할 것 ▲영역별 별도 방법론을 사용할 경우 각 방법론에 대한 설명 포함 필요 ▲본 사업의 착수부터 종료까지의 전반적 수행절차를 각 단계별 목표, 세부절차, 주요 영역, 기법및 산출물을 포함하여 제시할 것 ▲영역간및 영역 내 세부 영영 간 연관성을 논리적으로 기술하여 제시 할 것 등을 요구했다.
비교적 상세하게 제안서을 통해 IT서비스업체들이 최적의 개발방법론을 제시하도록 요구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보기에 따라서 여러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왜 사전에 필터링되지 않았나'...의문 = 정말로 특정 개발방법론의 유무가 우선 협상이 결렬될 정도로 ‘중대한 하자’라고 한다면, 한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교보생명은 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기 앞서, 사전 기술평가 단계에서 개발방법론에 대한 문제를 충분히 필터링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교보생명은 제안요청서(RFP)단계에서 이미 ‘국내외 보험사및 금융권 구축 사례에 기반의 최적의 개발방법론을 상세하게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만약 SK가 제안서를 통해 제출한 '최적의 개발방법론'을 포함한 각각의 답변이 부실했다거나 교보생명측의 눈높이를 충족을 시키지 못했다면 그에 앞서 우선협상대상자의 자격을 부여한 근거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물론 기술평가에는 개발방법론 뿐만 아니라 여타 기술 항목이 모두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개발방법론에 대한 교보생명 내부 기술평가에서 SK와 LG CNS간의 점수 격차가 있었는지, 또는 만약 이 부분에서 점수 격차가 없었다면 추후 우선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는 어떻게 성격을 규정해야하는지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한 개발방법론이 '사후 검증'과정에서 뒤늦게 불거진 문제라면 사후 검증과정 프로세스는 당사자들이 모두 납득할 수준의 정치한 내용이었는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이와함께 MDD 개발방법론의 적용이 차세대시스템 개발의 핵심 사안이었다면 교보생명측은 왜 사전에 제안요청서 단계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한편 이번 논란과는 별개로 '개발방법론이 과연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좌우할만큼의 중대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금융IT업계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교보생명 프로젝트 일정 차질 없나 = 한편 차세대 프로젝트 추진과는 별개로 앞으로 소송진행 과정에서 교보생명과 SK간의 공방은 진위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차세대 프로젝트 착수 시점이 늦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 교보생명에게는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개발방법론에 대한 문제가 협상 결렬의 전부였다면 차순위업체인 MDD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LG CNS와의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보생명의 차세대 프로젝트 추진기간은 약 30개월로, 프로젝트 완료시점과 맞물려 IBM과의 아웃소싱 연장계약도 만료되기때문에 일정 관리가 중요하다.
다만 SK가 우선협상자 지위보전 등 가처분 신청에 나설 경우 교보생명의 프로젝트 일정은 물리적으로도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투입된 개발자들에 대한 비용 발생 등 물론 IBM과의 계약을 재검토 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어 교보생명으로서도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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