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칭화유니그룹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업체인 웨스턴디지털을 통해 세계 4위 낸드플래시 업체인 샌디스크를 우회 인수하려던 계획이 철회됐다.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유니스플렌더가 웨스턴디지털의 지분 인수를 포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21일(현지시각) 웨스턴디지털은 주당 86.50달러, 총 190억달러(약 21조6500억원)에 샌디스크를 인수한다고 밝힌바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주당 85.10달러를 현금으로, 나머지는 자사주(0.0176주)로 지불하기로 했었다. 유니스플렌더로부터의 투자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조건으로 직전인 동년 9월 30일 웨스턴디지털의 지분 15%를 38억달러에 인수해 1대 주주로 올라섰으므로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인수가 불발되면서 모두 거품이 됐다.
칭화유니그룹이 샌디스크에 뻗치는 손길을 막은 것은 미국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였다. 정부기관이 나서서 양사의 거래를 면밀하게 조사하겠다고 결정하자 칭화유니그룹은 유니스플렌더로를 통한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겉으로 보면 중국의 무차별적인 인수합병(M&A)을 미국이 견제했고 이 과정에서 칭화유니그룹이 손을 뗀 모양새다. 이미 마이크론 M&A를 추진했으나 미국 정부의 불승인으로 실패한 기억이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칭화유니그룹에서 투자를 받지 못할 경우 샌디스크에 주당 67.50달러 및 자사주 0.2387주를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오는 4월 15일 열리는 웨스턴디지털 이사회는 실탄(투자금)이 없는 상황에서 굳이 샌디스크를 넘볼 이유가 없다. 사실상 중국의 미국 기업 인수가 저지된 셈이다.
샌디스크 인수여부와 관계없이 웨스턴디지털은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골치를 앓게 됐다. HDD는 낸드플래시 가격 인하와 용량 증가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게 밀리는 형국이어서다. 심지어 기업용 스토리지 시장에서도 EMC, HP, 델 등이 올플래시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어 HDD의 설자리가 더 좁아지고 있다. 경쟁사인 씨게이트도 마찬가지 상황이어서 웨스턴디지털은 어떤 형태로든 투자를 받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유니스플렌더의 투자 계획 철회가 웨스턴디지털의 대주주인 앨킨 자산운용이 샌디스크에 제안한 인수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철회를 요구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가격이 문제였지 중국의 의지가 꺾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는 양사의 거래를 조사할 필요성을 언급했을 뿐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어서 불씨는 살아있다.
이런 사실과 관계없이 중국의 미국 기업 M&A는 계속해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자금이 풍부하고 메모리 칩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투자로 지배력을 높이려는 계획에는 차질을 빚었으나 1대 주주로서의 영향력으로 기술 혹은 인력을 빨아들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한편 반도체 업계의 M&A는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세공정의 한계로 인해 반도체 설계와 디자인에 대한 비용 증가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어서 폭발적인 혁신보다는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혁신으로의 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팹리스 단위에서의 M&A는 시작에 불과하며 팹과 팹리스, 파운드리와 종합반도체업체(IDM)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수환 기자>shulee@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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