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신현석기자] 어제 정부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암호화폐(가상화폐)거래소 폐쇄’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협의 과정을 거친 뒤 추후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암호화폐 시장 분위기 및 투자자와 국민 여론을 좀 더 관망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마냥 갑론을박하면서 상황을 방치할 단계는 더 이상 아니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현재 미국, 중국 등 해외의 경우, 부분적 허용과 전면 규제 등 국가마다 암호화폐에 대한 인식이 달라 대응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벤치마킹할 대상은 없다. 결국 이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정치적 철학과 그에 기반한 정책적 선택에 달렸으며, 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인다.
여론은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거래소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규제는 반대하는 모양새다. 지난주 법무부의 가상화폐 폐쇄 발언으로 주식시장과 암호화폐 시장이 크게 요동치면서 투자자 불만이 극에 달하자, 정부도 최근 들어 극단적인 규제 방침에서 한 발짝 물러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암호화폐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는 주장이 거듭 제기되면서,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 셈법도 더 복잡해진 것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정부는 암호화폐의 투기적 성격을 잡아냄과 동시에 블록체인과 같은 긍정적 요인을 분리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암호화폐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블록체인이 곧 암호화폐는 아니다.
정부는 암호화폐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개발 지원을 약속하는 한편, 과도한 투기 수요를 바로 잡아 ‘시장 안정화’와 ‘투자자 반발 무마’ 효과를 모두 고려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 ‘암호화폐 규제-블록체인 지원’ 입장, 여론은 규제 반대가 더 많아 = 앞서 지난 15일 오전 정기준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과도한 가상통화 투기와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하되,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하고 육성해 나가기로 했다”며 ”거래소 폐쇄는 향후 범정부 차원에서 충분한 협의와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도 정부는 암호화폐의 투기 수요가 심할 경우 거래소 폐쇄까지 불사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때문에 국무조정실이 사회 곳곳에 퍼진 규제 반대 여론을 의식해 최대한 부드러운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16일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암호화폐거래소 폐쇄에 대해 “살아있는 옵션”이라고 밝히며, 정부가 여전히 거래소 폐쇄를 고려하고 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CBS 의뢰로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암호화폐거래소 폐쇄를 반대하는 응답은 47.7%였다.
이는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에는 반대하지만, 투기과열 방지를 위한 일정 수준의 규제는 필요하다(35.6%)’와 ‘암호화폐거래소 폐쇄는 물론, 그 어떤 규제에도 반대한다(12.1%)’는 응답을 합친 비율이다. ‘암호화폐거래소를 폐쇄해 투기를 근절시켜야 한다’는 응답은 42.6%였다.
즉, 약하든 강하든 규제의 필요성에는 찬성(78.2%)하면서도, 극단적인 거래소 폐쇄에는 반대(47.7%)하는 여론이 나타난 것이다. 규제 반대 분위기는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15일 취업포털 인크루트(대표 서미영)가 지난 11~12일 자사회원 571명을 대상으로 가상화폐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상화폐에 대해 ‘규제해야 한다(21.0%)’는 응답자보다 ‘규제하면 안 된다(34.9%)’는 응답자가 더 많았다.
이 같은 여론은 지난주 법무부의 거래소 폐쇄 발언 이후 나타난 시장 반응으로도 확인된다.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암호화폐거래소 폐쇄를 목표로 한다”는 발언이 보도된 이후, 암호화폐 가격은 물론, 주식시장 관련주도 모두 20~30%씩 폭락한 바 있다. 이에 투자자 여론은 들끓었다. 각종 인터넷 공간에선 현정부를 질타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이에 정부가 거래소 폐쇄가 정부의 공식 방침이 아니라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자, 비판 여론은 더 거세졌다.
아울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가상화폐규제반대>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라는 청원에 16일 오전 5시29분 현재 20만561명이 참여했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이후 마감일을 10일이나 앞둔 상황에서 20만명을 가볍게 돌파한 것이다. 한 달 내 국민청원 참여자 수가 20만명을 넘으면, 정부는 공식 입장을 내놔야 한다.
◆ 정부 규제 가시화될 수 있을까 = 이처럼 국민 사이에 규제 반대 움직임이 구체화됨에 따라, 정부가 실제 암호화폐거래소를 폐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현정부가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밀집된 20~30대를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2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거래소 폐쇄를 찬성하는 여론이 나타난 반면, 20대층에서는 ‘폐쇄 반대-일정 수준의 규제 필요’ 응답이 46.1%로 가장 높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인 블록체인을 도입하려는 IT업계 및 금융시장 내에서도 정부 규제가 시대를 거스르는 행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블록체인 등 암호화폐 관련 기술을 신규 사업 아이템으로 도입하는 등, 이미 시장 전반적으로 암호화폐의 흐름이 뿌리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네이버 창립멤버였던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은 항상 새로운 기술을 통제·조치하려는 움직임이 먼저 생긴다. 이는 유구한 관료제, 통제사회 역사의 영향"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1일 금융소비자원은 “현재의 (암호화폐) 사태는 시장과 투자자의 문제 이전에 정부의 금융정책 능력의 한계, 무능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며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변화에 맞는 금융정책과 핀테크, 블록체인 등 4차 산업과 접목된 금융산업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15일 정부가 거래소 폐쇄를 두고 “지난해 12월28일 특별대책에서 법무부가 제시한 대책 중 하나”라며 한발 물러선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도, 이 같은 국내 상황과 시장 흐름을 보다 면밀히 관찰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정부는 거래소 폐쇄를 두고 ‘범정부 차원의 협의와 조율’을 거치겠다며 폐쇄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도 않았다. 즉, ‘범정부 차원의 협의와 조율’에 국민 여론이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현석 기자>shs1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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