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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원칙 없는 통신비 인하 정책 혼란만 가중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원칙 없는 통신요금 인하 정책이 시장과 소비자 모두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 제대로 된 고민 없이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선택약정할인율을 20%에서 25%로 상향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통신사들에 발송했다. 통신사들의 법적 대응이 없으면 9월 1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선택약정할인율 확대에 따른 여러 논란이 있지만 소비자와 관련된 것 중 하나는 바로 기존 선택약정가입자 1400만명에게 25%를 소급적용하는 문제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소급적용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공론화가 됐다. 하지만 법적 근거도 없고, 사업자와 협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과기정통부는 기존 가입자는 제외한 채 제도 시행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에 혼선만, 가입자와 시민단체에는 불필요한 기대만 준 모양새가 됐다.

정부는 사업자와 약정에 따른 위약금 면제 등을 추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위약금 문제만 없어지면 기존 가입자도 25%로 갈아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통신사들은 소송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소송이 진행되면 할인율 확대는 언제 도입될지 알 수 없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점을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소송을 막겠다며 유영민 장관이 통신사 CEO들과의 만남을 적극 추진했던 이유다. 할인율 확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세부 사항인 기존 가입자 적용 문제까지 해결하려 했으니 시장에 혼란이 가중될 수 밖에 없었다.

통신요금 인하 정책으로 인한 혼선은 이것 뿐 만이 아니다.

사실 선택약정할인율 상향은 당초 통신비 인하 공약에서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통신비 인하 핵심 공약은 기본료 1만1000원 폐지였다. 하지만 기본료 폐지의 경우 법적 근거 없이 추진되다 보니 시장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 추진과정에서 기본료 폐지 범위를 놓고 국정위와 정책을 집행하는 미래부간에 엇박자가 나타나는 등 기본료 폐지 공약은 많은 논란만 남긴채 용두사미 꼴이 나고 말았다.

당에서 진지한 고민, 시장상황에 대한 분석 없이 대통령 공약을 만들고, 장관은 명확한 검토, 최소한의 논의조차 거치지 않은 사안을 의지만 갖고 밀어부치다보니 혼란이 가중된 셈이다.

통신정책은 특정인, 특정집단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거의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더 신중하고, 고민해야 한다. 요금정책은 소비자 편익에 직결되는 만큼, 매력적이지만 정책이 시장과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요금인하 정책으로 통신사들의 매출이나 이익이 줄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근거는 단순하다. 과거 기본료를 1000원 인하했을 때, 선택약정할인 12%를 처음 도입할 때, 다시 20%로 확대했어도 통신사 매출은 줄지 않았고 이익 역시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사업자도 매출, 이익 감소를 원하지 않는다. 수입이 줄면 가정집에서도 신문을 끊고, 외식, 여행 등도 줄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출이 줄면 주변상권, 전체 경제에 연쇄적으로 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난 20% 요금할인 때도 매출, 이익이 줄지 않았다는 정부의 말은 무책임하다. 정부의 장담대로 통신사들의 매출이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통신사의 그 결과가 통신 본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회사의 지분법 평가이익 효과 또는 대대적인 마케팅 비용 및 투자 축소에 따른 것이라면 정부의 요금인하 정책은 오히려 소비자 편익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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