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정부가 통신요금 인가제의 신고제 전환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문기)는 당초 6월 중 요금인가제도 개선을 골자로 한 통신요금규제 개선을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연기했다.
장관 교체 이슈도 일정에 영향을 미쳤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인가제도 폐지를 놓고 사업자, 학계, 시민단체 등이 나뉘어져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을 인상하거나 신규요금을 출시할 때 정부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KT 시내전화와 SK텔레콤의 이동전화가 대상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약탈적 요금제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으니 정부가 안전장치를 마련해 준 것이다.
하지만 사양산업에 접어든 유선전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이동전화 역시 이통3사의 무한경쟁에 알뜰폰 사업자들의 약진으로 시장상황이 과거와는 다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SK텔레콤에 대한 요금인가가 이동통신 시장의 고질적인 5:3:2 구도를 고착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요금원가에 대한 논란에도 요금인가제도가 한 몫했다.
이처럼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되다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고, 인가제가 폐지될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적극적인 요금인하 전략이 MVNO(알뜰폰) 활성화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돼 보류돼왔다.
하지만 요금인가제도 폐지는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논의되고 있다. 관건은 시장이 충분히 경쟁적인가, 제도 폐지로 인해 이용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느냐이다. 미래부는 최근 ▲기존 인가제 유지 ▲현행제도 보완 ▲인가제 폐지 및 신고제 보완 ▲완전신고제 전환 ▲신고제 폐지 등 5개의 방안을 제시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치열한 통신시장, 아직도 불쌍한 3위 사업자 있나?=스마트폰, 모바일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던 2G 시절 SK텔레콤의 경쟁력은 막강했다. 브랜드 가치, 주파수 및 서비스 품질 모두 경쟁사들보다 앞섰다. 하지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SK텔레콤의 점유율은 50%로 비슷하다. 1위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 때문이었다. 시장에서는 이를 유효경쟁정책으로 불렀고 그 덕에 LG유플러스는 어려운 시절 보호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인위적인 시장지배적 사업자 견제가 다소 불합리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공정경쟁, 이용자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필요한 정책이었다. 3위 사업자였던 LG유플러스의 경우 접속료 요율부터 주파수 할당 등 많은 정책적 배려를 받았다. 2002년 시작된 접속료 차등 정책으로 후발사업자는 1조원 이상의 재무적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번호이동시차제는 후발사업자들의 점유율 향상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1년 이통3사 모두가 황금주파수로 지목한 2.1GHz를 LG유플러스는 최저가격인 4455억원에 낙찰받았다. 다른 사업자를 원천적으로 경매에 배제시키는 정책적 배려 덕이었다.
LG유플러스는 이 같은 정책적 배려에 LTE 시대에서는 만년 꼴등에서 경쟁을 주도하는 사업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LG유플러스는 2G, 3G와는 달리 LTE에서는 한동안 KT를 앞서기도 했다. 또한 LTE에서는 선발사업자의 요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선도적으로 파격적인 요금을 출시하며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LTE 시장에서는 정부에 읍소만 하던 예전 LG텔레콤은 찾기 어렵다. 정부는 후발사업자의 인위적인 보호 덕에 지금은 다양성, 경쟁활성화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전적 규제 폐지추세…사후관리로 경쟁 활성화=재미있는 것은 요금인가제도는 후발사업자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요금인가제도는 사업자마다 비슷비슷한 요금제 출시를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SK텔레콤의 요금을 정부가 인가하면 후발사업자가 비슷한 수준에서 요금을 냈다.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이 이뤄질리 없었다. 50% 점유율을 유지해야 하는 1위 사업자에게는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제도였다.
도전정신을 찾기 어려운 3위 사업자, 점유율을 유지하면 되는 1위 사업자 모두에게 윈윈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5:3:2로 시장이 고착화됐다는 비판의 주범이 요금인가제도였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경쟁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제도의 취지와 달리 흘러갔다.
이 같은 시장상황을 감안해 정부도 전반적으로 요금인가제를 포함한 유효경쟁정책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LG유플러스를 봐주던 주파수 경매도 지난해에는 무한경쟁 방식으로 바꾸었다. LG유플러스를 비롯한 후발사업자가 충분히 선발사업자와 경쟁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접속료 차등정책 폐지도 시간문제다. 정부, 사업자 모두 큰 이견은 없다.
사실상 남은 것은 통신요금 규제다. 요금규제의 경우 특히 민감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요금을 정부가 규제하는 경우는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역시 가입률이 100%를 넘어섰고, LTE에서는 무한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신종원 YMCA 실장은 지난 12일 미래창조과학부가 개최한 관련 토론회에서 "인가제는 제대로 된 요금경쟁을 막는 취지였다"며 "(후발 이통사들이)요금인가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선발사업자의 요금인하를 막아서 이익을 보겠다는 것 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후발사업자라면 오히려 규제를 풀자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5:3:2 구도를 고착화시키는 제도인데 (후발사업자가) 점유율을 높이려면 전향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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