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IT 개발자 스토리] 개발자와 기획자는 적?
디지털데일리
발행일 2011-05-06 11:25:59
IT산업의 주인공은 개발자다. 현재 전세계를 호령하는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의 창업자들은 모두 개발자 출신이며, 개발자의 힘으로 현재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현재 이 회사들에 가장 중요한 자산도 개발자들이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IT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발자다. 그들의 창의력과 기술력이 IT산업을 이끌어간다.
하지만 국내 개발자들은 주인공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강도는 세고, 그에 비해 처우는 좋지 않다는 비판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IT개발자를 지원하는 청년들이 줄어들었고, IT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왔다.
개발자들은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 미디어는 극단적인 목소리만 담아왔다. 디지털데일리는 국내 리치인터넷애플리케이션(RIA) 대표업체 투비소프트와 함께 국내 개발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개발자들의 희노애락을 그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연재코너를 마련했다. 세 번째 이야기는 투비소프트 교육사업팀 김지영 팀장이 전한다. [편집자 주]
이외수 작가의 ‘하악하악’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U보트가 출현했을 때 연합군은 속수무책이었다. 군수뇌부들이 모여 연일 대책을 논의했다. 어느 날 장성급 간부 하나가 U보트를 퇴치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방책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바닷물을 끓이면 돼. "
곁에 있던 동료가 그에게 물었다.
"개쉐야,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바닷물을 끓이겠다는 거니. "
그러자 개쉐가 대답했다.
"나는 기획자일 뿐이야. 끓이는 건 엔지니어들이 할 일이지"
글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크게 공감이 됐다.
예전에 한 프로젝트에서 회의 시간에 기획자가 보따리 풀듯이 몽상을 풀어 놓은 적이 있다. 필자가 “그런 것들을 다 개발하기엔 일정상 불가능합니다”라고 하자, 기획자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제가 왜 개발자의 일까지 생각을 해야 되는 거죠?”
“개발자를 생각 하라는 게 아니고 일정을 생각하라고요.”
“일정에 맞춰 개발을 하는 건 개발자의 몫이죠”
무의미한 논쟁 인줄 알면서도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그때 그 기획자의 말은 트라우마(외상)처럼 필자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필자의 생각에 현실을 떠난 기획은 더 이상 기획이 아니라 몽상이다. 이런 몽상가들은 때때로 개발자들을 아주 힘들게 하곤 하는데,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일정을 맞춰야 하는 개발자들에게 기획자의 몽상은 반갑지 않다.
개발자는 일정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기획자는 프로그램의 질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기획자는 좀 더 이상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기획을 하고, 개발자는 기획자의 의도대로 일일이 개발을 하려다 프로그램의 수정과 변경이라는 반복적 작업에 지치게 되고 만다.
이런 논쟁은 기획자와 개발자를 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자와 개발자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논쟁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기획자가 무조건 개발자 입장에서 개발자의 편의를 봐주면서 기획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것 또한 답이 될 수 없다. 기획자가 개발자 입장에서 기획을 시작한다면 이런저런 고려해야 될 부분들로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가 생각하는 해답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어도 반드시 필요하다면 만들어야 한다. 반면 노력과 시간에 비해 필요성이 낮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런 부분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기획자와 개발자가 서로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U보트를 물리치는 것이지 바닷물을 끊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론 목적보다 수단에 집중되어 프로젝트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다.
기획자와 개발자는 적이 아니라 동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한 논쟁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소통을 해야 한다.
완성도 높은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기획자와 개발자가 고객의 요구 사항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구현해 내기 위해 충분히 협의한다면, 최소한 ‘하악하악’의 개쉐와 같은 몽상은 하지 않게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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