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최근 방문한 엘앤에프의 구지3공장. 대구국가산업단지 2단계 구역이 아직 조성되지 않은 탓에 홀로 우뚝 선 요새처럼 자리잡고 있다. 2년 차로 접어든 전기차 캐즘(Chasm)으로 공장은 큰 소음 없이 조용했고, 일부 근무자들만이 오가며 라인 활성화에 힘쓰고 있었다. 다만 양극재 샘플 생산과 테스트, 고객 방문들을 주도하면서 향후 다가올 '포스트 캐즘'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엘앤에프의 구지3공장은 지난해 8월 최종 완공된 양극재 생산 시설이다. 엘앤에프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하이니켈 삼원계 양극재를 비롯해 차세대 제품으로 꼽히는 리튬인산철(LFP), 울트라하이니켈계 단결정-다결정 복합 양극재 등이 생산된다. 구지3공장의 연간 생산 규모는 8만톤 내외로, 엘앤에프가 보유한 왜관 공장·구지 1, 2공장과 비교해 가장 큰 생산 역량을 자랑한다.
외부에서 본 구지3공장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였다. 1, 2공장 대비 배치된 근무자가 적어 거대한 공장 부지가 더욱 광활하게 느껴졌고, 공장 가동에 따른 소음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공장 앞에는 근무자들의 숙식을 위한 기숙사가 8층 규모로 지어져 있었지만 이용률은 낮아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기숙사가 일반 주거 비용 대비 많이 저렴하기에 이용을 장려하고 있고, 본격적으로 공장이 돌아가는 시기부터는 이를 활용하는 근무자들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장 내부로 들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원료를 주입하는 원료 투입구였다. 가장 상층에 자리한 원료 투입구에 리튬이나 전구체 등을 넣으면 보관 탱크로 이동하고, 이를 레시피에 맞게 계량해 혼합 된 이후 소성로에 투입된다. 양극재 공정은 대량의 원료를 투입해야 해 그 과정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야만 높은 생산량과 원가 절감을 이룰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상층에서 원료를 넣고 아래 층으로 향하며 충진·분쇄·분리 등 공정을 진행하는 하향식(Top-down) 레이아웃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구조를 만들면 별도의 컨베이어벨트나 물류 라인을 활용할 필요 없이 중력 만으로 원료 가공을 위한 이동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
가장 높은 상층에서 투입된 원료는 파이프를 타고 거쳐가며 혼합·충진·소성·쇄·분리 과정을 거친다. 원료투입구 하단에 곧바로 배치된 분리기(mixer)를 통해 균일한 형태로 소재를 혼합해 1차 소성을 거쳐 충진한 다음, 이를 쇄·분리해 균일한 입자 형태로 만드는 식으로다. 이 과정에서 입자 크기가 균일하지 않은 소재는 다시 파이프를 타고 위로 올라가 분쇄와 분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공정 설비 곳곳에 배치된 탈철기의 존재도 인상적인 요소 중 하나다. 탈철기는 리튬·니켈 등 원재료 내 섞여 있는 이물인 철(Fe)을 분리해 제거하는 장비로, 배터리의 안전성과 양극재 수율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아울러 니켈 내 철까지도 분리해 니켈 순도를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균일한 입자로 이뤄진 혼합소재들은 표면에 잔존하는 부산물을 제거하는 수세 공정을 거친 후 표면에 다른 물질을 코팅하는 2차 소성 과정을 지나 완성된다.
엘앤에프는 구지3공장을 짓기 전부터 자동화를 고려해 레이아웃을 완성했다. 근무자가 가장 많이 투입되는 원료 투입구나 양극재 반제품·완제품을 옮기는 포장 과정에서 보다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최적의 구조를 마련한 것이다. 현장 엘앤에프 관계자는 "본격 가동이 시작되면 원료 투입구에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하고 무인운반차량(AGV)을 배치할 예정"이라며 "마찬가지로 포장 과정에서도 AGV를 배치해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지3공장의 또 다른 주목 요소는 높은 청결도와 환경관리 체계다. 통상 양극재 공장은 금속을 분리하고 탈철하는 공정이 포함된 탓에 파이프라인이나 벽면 등이 분진으로 금새 오염되기 십상이지만, 구지3공장은 타 공장과 달리 공정 외부로 빠져나오는 이물질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엘앤에프 관계자는 "공장의 청결도는 (배터리) 고객사들이 양극재 업체를 고를 때 가장 핵심적으로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다. 벽면이나 일부 틈새를 장갑으로 닦아내보고 먼지가 있으면 지적할 정도"라며 "엘앤에프는 양극재 업체 중에서도 청결도 측면에서 매우 예민하게 관리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구지3공장은 전기차 캐즘 여파로 가동 시기가 밀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장에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긍정적인 전망을 여전히 밝게 바라보고 있었다. 구지3공장에서 시생산 중인 양극재 샘플들이 '포스트 캐즘' 이후 나올 프로젝트들용으로 심사를 받고 있는 만큼, 이에 따른 수주를 확보하면 할수록 생산 확대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덕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될 대표적인 제품이 최근 '인터배터리 2025 어워즈'를 수상한 하이니켈 복합 양극활물질이다. 이는 니켈을 95% 함량한 다결정·단결정 양극재로, 기존 하이니켈 대비 에너지밀도와 배터리 수명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이 제품은 단결정 양극재 함량이 전체의 40~50%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초기 단결정 양극재 양산 당시 예상됐던 10% 내외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현재 배터리 업계는 단결정 양극재의 높은 저항 문제를 고려해 다결정과 단결정 소재를 혼합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이니켈 복합 양극활물질 제품은 올해 하반기나 내년 이후부터 구지3공장의 메인 제품으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 주력 고객사인 LG에너지솔루션·테슬라 등의 46파이 원통형 배터리에 탑재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LG에너지솔루션 외 다른 루트로의 판촉도 확대하고 있는 덕이다. 실제로 엘앤에프는 최근 해외 차량 OEM으로부터 하이니켈 복합 양극활물질을 포함한 7년간 3.5조원 규모의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회사가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LFP용 양극재도 구지3공장을 기반으로 생산될 예정이다. 현재 구축된 LFP 양극재 양산급 파일럿 라인(Mass Pilot)의 경우 이날 방문한 곳이 아닌 인근에 구축된 상황이지만, 본격적인 납품이 시작되면 이 공장을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다.
엘앤에프가 생산할 LFP 양극재는 국내 배터리 3사를 타깃으로 우선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엘앤에프 외의 비(非)중국 양극재 업체가 LFP 생산에 돌입한 곳이 적은 만큼, 미국 해외우려기업집단(FEOC) 지정을 우회할 수 있는 루트를 선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서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유럽에서 르노가 탑재하는 LFP 배터리용 양극재를 중국 업체로 지정했으나, 북미용 LFP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전기차용 배터리 양극재로는 중국 외 선택지를 골라야만 한다. 이는 SK온, 삼성SDI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리튬 등 원료와 전구체를 내재화하는 '클로즈드 루프(Closed-Loof)' 방식이 구지3공장을 통해 완결될 전망이다. 자회사 제이에이치화학공업(JHC)을 통해 확보한 전구체 기술을 LS와 합작한 '엘에스엘앤에프배터리솔루션(이하 LLBS)'에 적용하고, LS의 원료 확보 경쟁력과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형태로다. 전북 새만금에 구축된 LLBS 공장은 올해 5월부터 시운전에 돌입해 내년 1분기부터 본격적인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캐즘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전기차 모델의 다양화와 각 업체들의 원가 절감 등이 이뤄지면서 생산이 확대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구지 3공장은 다가올 '포스트 캐즘'에 맞춰 프로젝트를 확보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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