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올해는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이 설립된 지 30년째다. 우리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빠르게 하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이제는 앞으로의 30년을 고민할 때다. 그동안 해왔던 것 이상의 새로운 도전을 맞이했는데, 정부가 현장에서 일하는 기업들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서 역동성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강도현 제2차관)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강도현 제2차관이 인공지능(AI) 기업 대표들을 만나 현장 목소리를 청취했다.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면 될지 목소리를 청취하기 위함이다.
이날 간담회는 서울 강남구의 코난테크놀로지 사옥에서 진행됐다. 강도현 차관을 비롯해 최근 부처간 벽을 허물기 위해 행정안전부에서 과기정통부로 자리를 옮긴 황규철 소프트웨어(SW)정책관 등 과기정통부 관계자들이 참석해 기업 현장의 의견을 들었다.
산업계에서는 코난테크놀로지, 카카오, LG AI연구원, 매스프레소, 뤼튼테크놀로지스, 로앤컴퍼니, 마키나락스, 슈퍼브AI, 사피온, 프랜들리AI, 딥노이드, 라이언로켓. 베인앤컴퍼니 등 13개 기업 대표가 참석했다. 대규모언어모델(LLM) 및 AI반도체 개발, 수학 특화 AI 학습 플랫폼, 법률 플랫폼, 제조 등 각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서비스를 개발 중인 기업들이다.
차관 임명 이후 처음으로 AI 기업 현장을 찾은 강도현 차관은 “프로젝트를 꾸리고 현장을 누비셨던 박영규 전 차관님의 그늘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참석한 분들의 면면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199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와 소통하며 함께 성장해온 기업들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올해로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이 수립된 지 30년째다. 그동안 굉장히 많은 발전이 있었다. 국민들의 열망이 이뤄낸 성과”라며 “이제는 앞으로의 30년을 준비해야 한다. 감히 정부가 앞서나가겠다고 말씀드리긴 어렵더라도, 기업들의 뒤를 든든하게 받칠 수 있도록 하겠다. 어려운 것 있으면 (제가) 선봉에 서서 맞서고 대신 뻗는, 여러분의 역동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피력했다.
◆기술적 진보에 열광했던 2023년… 2024년은 ‘경제성’에 주목
간담회의 발표를 맡은 것은 코난테크놀로지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다. 코난테크놀로지는 자사의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 서비스의 실사용례를, 베인앤컴퍼니는 AI 산업계에 대한 투자 동향과 전망 등을 각각 소개했다.
베인앤컴퍼니 신창민 부파트너는 “저를 포함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 2023년은 10년 같은 1년이었을 것 같다. 최근의 혁신은 경외감이 들 정도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챗GPT의 등장 직후 순차적인 변화를 예견했지만 오판이었다. 작년 하반기,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인 변화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그는 작년과 2024~2025년 ‘위너(Winner)’를 결정하는 요인이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2023년에는 신기하고 재미 있는, 기술적 진보 자체에 열광했다면 앞으로는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어떤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LG AI연구원 배경훈 원장은 “LLM을 개발하는 것과 실제 서비스를 만들어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사업화가 가능한 서비스를 발굴하고 데이터를 모아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도메인에 특화돼 있는 차별화된 비즈니스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간담회를 위해 모인 기업들의 공통 고민은 자본력을 앞세운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이다.
매스프레소 이용재 대표는 “AI는 자본 집약적인 분야다. 지금 우리가 글로벌을 선도하는 영역이 있지만, 아직 보유한 데이터의 1%밖에 사용하지 못한 수준이다. 그 이상을 사용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해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본 경쟁으로 흘러갈 경우 한국 기업들은 다들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오픈AI는 수천조원에 달하는 금액의 펀딩을 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픈AI의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설립 3년차 앤트로픽은 1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 중이다. 카카오 정신아 대표 내정자는 “AI에는 케펙스(Capital Expenditures, CAPEX)가 정말 많이 들어간다. 카카오도 허덕일 정도”라고 말을 보탰다.
◆“AI는 자본집약적인 분야… 글로벌 경쟁 쉽지 않아”
자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규제를 적극적으로 완화해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유롭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문제가 생길 때까지는 인내하고 봐준다면 자발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다.
딥노이드 최우식 대표는 “한국은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전통 산업과 혁신 산업이 공존하는 시장이다. 자체 시장은 작기 때문에 내부에서 충분히 검증한 뒤 해외로 나가는, 삼성이나 현대차와 같은 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며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제조와 관련된 역량, 의료나 제약‧바이오 분야 데이터를 활용해서 서비스를 만들어서 국내에서 개념검증(POC)만 된다면 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2시간여에 걸쳐 산업계의 여러 의견을 청취한 강도현 차관은 “해봅시다”며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규모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말씀하신 해외 진출을 위한 투자에 대해서는 정부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우리 기업이 더 잘할 수 있도록 해외 거점이나 기반을 더욱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또 “관계부처와 새롭게 도전하는 자세로,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듯하다. 그 과정에서 규제를 혁파해 나가는 부분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이끌어내는 것이 과기정통부의 역할”이라며 “체계 재정비를 반드시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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