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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선언 40년, 메모리 1위 30년…이재용에 주어진 과제 '타도 TSMC'

- 선대 회장들이 물려준 삼성 반도체…JY가 만들어갈 ‘뉴삼성’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도쿄선언’이 40주년을 맞았다. 반도체가 삼성을 넘어 대한민국 최대 수출품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이 창업회장이 반도체 씨앗을 뿌렸다면 이를 키워낸 건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다.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기점으로 메모리 최강국 일본을 제치고 30년째 1위를 유지하게 한 장본인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재용 삼성 회장이 두 사람을 대신하게 됐다. 1~2대 총수의 업적을 이어받은 이 회장은 시스템반도체라는 결실을 맺어 후대에 물려주고자 한다.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 깨고 30년 연속 메모리 1등

1983년 2월8일.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로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를 해야겠다. 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했다. 발신자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었다.

당시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하지 않던 건 아니었다. 1974년 파산 직전에 놓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뒤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자체 기술이 없었던 터라 몇 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랜 고심 끝에 이 창업회장은 제대로 반도체 사업을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2월8일 일본 도쿄에서의 중대 발표로 의지를 드러냈고 한 달 뒤 삼성은 ‘우리는 왜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선언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외 반응은 싸늘했다. 미국 인텔은 이 창업회장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불렀고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3년 안에 망한다’ 등 부정적인 전망도 쏟아졌다. 한국 정부와 재계에서도 난색을 보였다. 당시 세계 최빈국을 겨우 벗어난 나라에서 첨단 산업에 뛰어드는 건 불가능한 도박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훗날 이 창업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잘못하면 삼성 그룹 절반 이상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삼성이 아니면 이 모험을 하기 어렵다고 봤다”고 회고했다.

조롱과 우려 속 삼성은 같은 해 5월 64K D램 개발에 착수한다. 이후 6개월 만에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개발에 성공하면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일본이 6년 이상 소요됐던 걸 반년 만에 이뤄내면서 기술 격차를 10년에서 4년 내외로 줄였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이후 삼성은 생산공장을 짓는 등 사업을 본격화한다.

이듬해인 1984년 5월 삼성은 기흥 반도체 1공장 준공식을 열었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면서 일본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도쿄선언 10년 만이자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있던 1993년 메모리 1위 기업으로 거듭난다.

신경영 선언은 그해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 선대회장이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은 데서 비롯됐다. 해당 문서는 삼성 내 일본인 디자인 고문 후쿠다 다미오가 작성한 것으로 회사의 적나라한 현실이 담겼다. 이에 이 선대회장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자마자 전 세계 임원들을 불러 모아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다.

삼성은 1994년 256M D램, 1996년 1Gb D램 등도 선점하면서 위상을 더욱 높여갔다. 이러한 분위기는 새천년에 들어서도 이어졌다. D램에 이어 플래시 메모리 시장이 개화하는 시점에 노어플래시를 채택한 인텔 등과 달리 삼성은 낸드플래시를 선택하면서 또 한 번의 성공을 일궈낸다. 이후 2010년 전후 펼쳐진 두 차례 치킨게임까지 승리를 거두면서 ‘초격차 시대’를 열었다.


◆무궁무진한 반도체 산업…선대가 가꾼 30%, 후대가 나머지 채울까

삼성이 메모리 부문을 지배하고 있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메모리는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약 30%에 그친다. 이제 삼성의 시선은 70%를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로 향한다.

사실 시스템반도체는 이 선대회장의 혜안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삼성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스템LSI 사업을 시작했다.

1994년 디지털시그널프로세서(DSP)를 국내 최초 개발한 것을 계기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CMOS 이미지센서(CIS), 전력관리칩(PMIC),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도 만들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사업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실질적으로 2010년 중반부터 삼성을 이끌어 온 이재용 회장은 2017년 파운드리 사업팀을 독자적인 사업부로 승격시켰다. 설계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고객사를 유치하는 차원이었다. 이때부터 파운드리에 본격적으로 초점을 맞춘 셈이다.

2019년 4월24일. 이 회장은 성공한다면 두고두고 회자될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다.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 1위로 도약하겠다는 게 골자다. 2021년에는 기존 계획에 38조원을 더해 총 171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현재 삼성은 파운드리 업계 2위다. 후발주자지만 단기간 내 선두권에 진입한데다 10나노미터(nm) 미만 공정이 가능한 ‘유이한’ 업체로 등극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TSMC는 모리스 창이 1987년 창업한 회사로 35년 넘게 파운드리 한 우물만 파왔다.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수십년 동안 세계 최고 자리를 지켜왔다.

TSMC는 시장점유율 50% 초중반으로 20%대 초반인 삼성전자와 약 30%포인트 차이를 보인다. 2022년 하반기 TSMC는 메모리, 시스템LSI, 파운드리 등 3가지 사업부를 보유한 삼성 반도체 매출을 넘어서기도 했다. 순수 파운드리로서 이례적 결과다. 그만큼 압도적인 장악력을 갖추고 있다.

삼성의 파운드리 도전은 이제부터다. 지난해 회장 취임한 이 회장은 주기적으로 기술력을 강조하면서 ‘타도 TSMC’을 간접적으로 외쳤다. 역대급 반도체 불황에도 삼성은 경쟁사들과 달리 반도체 투자 규모를 줄이지 않기로 했다. 이는 메모리 격차 확대, 파운드리 격차 축소를 위한 승부수로 여겨진다.

지난해 6월 3nm 공정을 세계 최초 상용화하면서 반도체 업계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첨단 기술을 선점했다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나 삼성 파운드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3nm 기술 발표 전후로 대만 언론의 삼성 견제가 심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TSMC 역시 충분한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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