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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나도 감산없다"…삼성 반도체, 100조 벌고 50조 쏟는다 [IT클로즈업]


- 삼성전자, 반도체 투자 규모 유지…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촉각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삼성전자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내심 메모리 1위의 변심을 기대했던 경쟁사들은 근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당분간 업황 개선이 어려운 만큼 이번 결정이 격차를 벌릴지, 좁힐지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지난달 31일 삼성전자는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이러한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자체 페이스대로 투자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의지다.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을 이끄는 경계현 사장은 “그동안 우리는 호황기에 투자를 많이 하고 불황기에 적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이클이 빨라지면서 부족했던 투자로 호황기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업앤다운에 의존하기보다는 꾸준한 투자가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작년 하반기 들어 반도체 한파가 불어닥치면서 경기에 민감한 메모리 산업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급락했고 메모리 제조사의 재고는 계속 불어났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재고 일수는 20주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수준인 5~6주보다 약 4배 많으며 고객사 재고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30주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요 부진에 따라 가장 앞서 실적을 공개하는 미국 마이크론은 9~11월에 영업손실 1억9500만달러(약 2400억원)로 나타났다. 이 회사의 분기 적자는 7년 만이다. 대만 난야는 2022년 4분기 영업손실이 11억5000만대만달러(약 500억원)로 2012년 4분기 이후 10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이 기간 1조7000억원의 손실을 냈다. 2012년 3분기 이후 첫 적자다.

업계 리더인 삼성전자도 먹구름을 피하지 못했다. DS부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2700억원으로 전기대비 95% 전년동기대비 97% 떨어졌다. 적자를 겨우 면한 수준으로 DS부문이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기지 못한 건 2012년 1분기 이래 처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한창이던 2009년 1분기 다음으로 낮은 수치이기도 하다.

문제는 당분간 시황 약세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김재준 부사장은 “고객사의 재고 조정 기조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단기 수요 회복 모멘텀은 약할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하반기 고객 구매심리 회복이 기대되나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현시점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 메모리 가격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스포스에 따르면 1월 PC용 D램 범용제품(DDR4 1Gb×8) 고정거래가는 평균 1.81달러로 전월(2.21달러)대비 18% 폭락했다. 새해 들어서도 하락 국면이 계속됐다.

이에 따라 마이크론은 올해 반도체 생산 20% 설비투자 30% 이상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인력 구조조정까지 감행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시설투자 규모는 전년(10조원대 후반)대비 50% 이상 감축을 공식화했다. 아울러 최근 중국 우시 등 생산라인 웨이퍼 투입량을 축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메모리보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한 시스템반도체 강자 TSMC, 인텔 등도 투자나 인력 등을 줄여 불황에 대응하고 있다.

남은 건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삼성전자까지 감산에 동참해 메모리 가격 방어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감산 계획 물음에 “시황 약세가 당장 실적에 우호적이지 않으나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 필수 클린룸을 확보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결론적으로 올해 시설투자액은 전년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2022년 반도체 분야에 47조9000억원을 투입했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계산하면 DS부문의 지난해 연매출(98조4600억원) 절반 가까이를 쓰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극자외선(EUV) 차세대 공정, 올해 하반기 본격화가 예상되는 고성능·고용량의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로우파워(LP)DDR5X 공정 전환, 경기 평택 3~4기, 반도체 전용 연구개발(R&D) 팹 등에 투자가 단행된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반도체 사업에서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대내외적인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삼성전자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감산 없이 가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자신감의 배경으로는 우선 두둑한 실탄이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128조원에 달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심도 있게 논의 중인 인수합병(M&A)에 들어갈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상대적으로 탄탄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낸 것도 강점이다. 삼성전자는 적극적인 투자로 업계 최대 규모의 경제를 이룬데다 메모리 회사 중 가장 수준 높은 첨단 공정을 구현할 수 있다.

가령 똑같은 10나노미터(nm) 4세대(1a) D램이어도 삼성전자 회로 선폭은 14.0nm로 14.Xnm인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보다 한 수위다. 이는 생산성은 높이고 원가는 낮출 수 있게 한다. 메모리 업계의 연이은 적자 행진 속 흑자를 유지한 비결이다.

또한 과거 메모리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경험도 삼성전자가 ‘NO 감산’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물론 삼성전자도 ‘자연적인 감소’라는 퇴로를 마련하기는 했다. 김 부사장은 “최고품질과 라인 운영 최적화를 위해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와 설비 재배치 등을 진행해 미래 선단 노드 전환을 효율적으로 추진 중”이라며 “공정 기술력 강화, 조기 안정화를 위해 시험생산(엔지니어링 런)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단기구간 의미 있는 출하량 축소를 유발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울러 시설투자액 중 R&D 항목 비중을 이전 대비 증가시키기로 했다. 무작정 생산능력을 확장하기보다는 미래 시장 대비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김 부사장은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시장 대응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이어서 미래 성장 준비 차원에서 실행 속도를 높여 진행할 계획이다. 지정학 이슈 등 시장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단기 및 중장기 시장 수요 변화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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