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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인텔·SK '감산할 결심'…브레이크 없는 삼성 [IT클로즈업]

- 글로벌 반도체 기업, 투자 축소 공식화
- 삼성전자 “인위적 감산 없다…수요 회복 대비”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하반기 반도체 업계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 2분기까지만 해도 역대급 실적을 달성한 것과 대비된다. 시장 상황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주요 업체는 연이어 긴축 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존 투자 계획을 강행하기로 한 삼성전자에 관심이 쏠린다.
◆대내외적 악재 겹쳐…“축소, 축소, 축소”=31일 업계에 따르면 TSMC 인텔 SK하이닉스 등은 감산 계획을 내놓았다. 배경에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이슈 등으로 가라앉은 세계 경제가 있다.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1위 대만 TSMC는 올해 3분기 매출액 6131억4000만대만달러(약 27조5100억원), 영업이익 3103억2000만대만달러(약 13조9200억원)으로 나타났다. 각각 전년동기대비 47.9%와 81.5% 올랐다. 이 기간 영업이익률 50.6%로 전년동기대비 9.4%포인트 향상됐다.

이러한 호성적에도 TSMC는 지난 13일 연말까지 360억달러의 시설투자액을 집행한다고 밝혔다. 연초 발표한 400억~440억달러에서 10% 이상 하향 조정한 수준이다. 배경으로는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경기침체가 꼽힌다. 이는 TSMC가 생산하는 반도체 응용처인 스마트폰, PC, 서버 등 수요 위축을 의미한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산업 전반적인 업황은 후퇴할 수 있다. 지난 3년과 달리 4분기에는 회사가 가진 생산능력(캐파)을 모두 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감산을 시사하기도 했다.
인텔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3분기 매출 153억4000만달러(약 21조8000억원), 순이익 10억2000만달러(약 1조4500억원)으로 각각 전년동기대비 20% 및 85% 하락했다.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이 악화한 탓이다.

인텔은 내년 운영비 등에서 30억달러(약 4조3000억원)를 절감하는 등 2025년까지 최대 100억달러(약 14조2000억원) 비용을 줄일 방침이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현재 비즈니스 사이클에 잘 대처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비용을 조절하고 있고 효율성도 높여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도 실적 부진이 불가피했다. 지난 3분기 매출 10조9829억원 영업이익 1조6556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7.0%와 60.3% 감소했다. 이에 투자 축소를 공식화했다. 내년 투자액을 올해(10조원대 후반) 대비 50% 이상 줄일 예정이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때 반도체 업계가 단행한 조치에 버금가는 수치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은 “(현재 상황이) 고통스럽다. 웨이퍼 캐파 투자를 최소화하고 공정 전환도 일부 지연할 것”이라며 “향후 팹 운영 효율성 향상을 위한 제품 믹스 및 장비 재배치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마이크론과 키옥시아, UMC 등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론은 지난 6~8월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19.7%, 48.5% 하락했다. 아울러 내년 설비 30%, 웨이퍼 장비 50% 정도로 투자를 감축하기로 했다. 키옥시아는 이달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30% 떨어뜨려 생산량 조절에 들어갔고 UMC는 올해 시설투자를 36억달러(약 5조1000억원)에서 30억달러(약 4조2500억원)로 낮췄다.

◆남다른 삼성전자 전략…“투자 그대로 간다”=삼성전자 역시 3분기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 기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3조200억원, 5조12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동기대비 14%와 49% 뒷걸음질했다.

경쟁사들이 연쇄적으로 직간접적인 감산에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달 초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열린 ‘삼성 테크 데이 2022’에서 “현재로서는 (감산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실적에서도 한진만 삼성전자 부사장은 “올해 들어 매크로 이슈로 수요가 위축되고 재고 수준이 증가한 건 사실”이라면서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인위적 감산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상반된 움직임은 과거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경험과 기술 및 가격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장기간 메모리 1위를 사수 중인 삼성전자는 2001년 마이크론, 2009년 키몬다, 2012년 엘피다 등과 출혈 경쟁에서 생존한 바 있다. 2000년대 초 메모리 최강자였던 마이크론은 3위로 전락했고 키몬다와 엘피다는 파산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압도적인 원가경쟁력과 캐파를 내세웠는데 이번에도 유사한 전략을 취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 셈이다.

지난달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메모리의 경우 원가에서 10% 이상 차이가 나고 가격을 10% 절감 가능하니 경쟁사보다 단가에서 약 20% 격차를 벌릴 수 있다”면서 “업황 업앤다운에 의존하기보다 꾸준한 투자가 맞다고 본다. 시장에 맞춰 조절하겠으나 기본 방향은 시황과 무관하게 일관된 투자”라고 역설했다.
삼성전자는 자본과 유연성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 우선 현금성 자산이 125조원을 넘는다. 당장 수익성이 떨어져도 버틸 수 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을 동시에 한다는 부분도 있다. 일례로 경기 화성과 평택 내 극자외선(EUV) 전용라인은 두 부문이 함께 쓴다. 시황에 따라 수요공급 균형을 맞추는 데 유리하다는 뜻이다. 평택캠퍼스의 경우 2공장(P2)부터는 복합 기지로 꾸리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유동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삼성전자의 투자가 단순히 양산 물량 증대로 직결되는 건 아닌 만큼 이같은 기조가 유지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개선, 신공정 개발, 차세대 EUV(하이NA) 설비 구매 등 기술 투자가 동반된다는 이유에서다.

한 부사장도 “올해 또는 내년 투자가 다음 해 생산량 증대로 즉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단기적인 수급 균형을 위해 움직이기보다는 적정 수준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계획이다. 중장기 관점에서 수요 회복을 대비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쉘 퍼스트’ 방식도 도입한다. 이는 클린룸을 먼저 구축한 뒤 시장 수요와 연계해 탄력적으로 설비 투자하는 방안이다. 전용 공간을 미리 확보해놓고 필요할 때 설비를 투입하기 때문에 대응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대세를 따르지 않는 삼성전자가 어떠한 결론을 낼지 기대 반 걱정 반”이라면서 “삼성전자가 양과 질 모두 주도하는 그림이 그려지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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