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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망사용료 논쟁에서 어떻게 ‘양탈을 쓴 늑대’가 되었나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구글은 인도의 광고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페이스북의 무료 비즈니스 모델을 막아야 했다. 구글은 인도 내 엘리트 집단을 이용해 페이스북의 무료 서비스가 배포되면 세상의 종말이 올 것처럼 여론전을 펼쳤고, 결과적으로 페이스북은 무료 비즈니스 모델로는 인도 시장에 진출할 수 없게 됐다.”

미 포브스지의 시니어 칼럼니스트인 로슬린 레이튼 박사<사진>는 지난 2016년 당시 페이스북(현 메타)의 인도 시장 내 제로레이팅(Zero rating·데이터 무과금) 전략이 무산된 배경을 이 같이 설명하며, 구글이 최근 한국에서 유튜버들을 내세워 망무임승차방지법을 반대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점에 대해 시사점을 던졌다.

레이튼 박사는 20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망사용료 정책과 입법 : 이슈 담론화와 여론 형성’ 세미나에서 최근 망이용대가를 둘러싸고 구글과 유튜버들이 적극적인 반대 움직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초국가적 행동주의Transnational Activism’로 정의했다. 초국가적 행동주의는 한 국가의 규범이나 관습을 글로벌 기준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개인, 기업, 비영리단체의 움직임을 말한다.

문제는 이 초국가적 행동주의가 때로는,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사람들을 부추겨 특정 의견을 주장하도록 만들고 궁극적으로 기업이 이익을 얻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망무임승차방지법을 무력화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레이튼 박사는 “한국 사례는 풀뿌리 운동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기획과 지휘 하에 조직된 움직임이자 전략의 일부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망무임승차방지법 반대 움직임은 구글이 여론전에 뛰어들면서 본격화됐다. 앞서 거텀 아난드 구글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은 유튜브 코리아 블로그를 통해 망무임승차방지법이 통과될 경우 “유튜버 등 크리에이터에게 불이익이 될 것”이라며 입법 반대 서명 운동을 독려했고, 이어 유명 유튜버들이 잇따라 망무임승차방지법을 비난하는 영상을 게시하면서 부정적 여론에 불을 지폈다.

망무임승차방지법은 국내 전기통신망을 이용하는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가 정당한 망 이용계약 체결 또는 망 이용대가 지급을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내외 빅테크들이 주요 대상이며, 국내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구글은 이 법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 사업자다. 구글은 그러나 이 법안이 개인 창작자들에게 불이익이 될 것이라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레이튼 박사는 “이런 활동이 부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풀뿌리 운동이 아니라 하향식 움직임이며 여론 조작”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시장에서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구글은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나 마찬가지”라며 “범인은 인터넷 사업자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자신의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거대 테크 기업들”이라고 꼬집었다.

레이튼 박사는 “구글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른 국가에선 결국 구글이 원하는 대로 정책이 만들어지게 됐다”며 “정책 입안자는 이런 행동주의의 출발지가 어딘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는 집단·개인에 비추어보며 정치 행동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구글이 만든 여론전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공감대가 모아졌다. 고흥석 군산대학교 교수는 “인터넷의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사상의 자유와 공정한 시장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인터넷 공간에서 구글이라는 독점적 여론 형성 기제가 만들어진 상황에서도 보장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있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망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이제 생명력을 잃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망의 공정한 이용이라는 관점에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어떻게 비용을 분담할 것인지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망무임승차방지법은) 사업자간 사적 계약 문제에 왜 정부가 개입하냐는 쟁점이 있는데, 이미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서 “페이스북의 고의 접속 지연으로 이용자 피해가 있었고, 트위치에서는 의도적으로 화질을 저하시켰으며, 구글은 명백하게 크리에이터들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당연히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역할도 당부했다. 노 연구위원은 “사업자간 문제 조정과 더불어 지금의 상황을 국민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정부가 사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대근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은 “망이용대가 관련 전문가들의 연구물 생산이 부진했고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정보 역시 충분히 통합적이지 못했다”며 “시장에 충분한 정보제공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이 단순 진영 논리가 아니라 ‘informed decision’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전문가 및 정부의 역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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