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2024년은 글로벌 메가 IP(지식재산)의 가치를 재발견한 한 해였다. 그간 내부에서 우리의 IP 가치를 저평가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반성의 계기가 됐다.”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 오피스에서 <디지털데일리>와 만난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은 사상 최대 실적을 쓴 작년 한 해를 되돌아보며 이같이 평가했다.
크래프톤은 작년 매출 2조7098억원, 영업이익 1조1825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대비 41.8%, 54% 상승했다. 마진만 놓고 보면 업계 선두 사업자인 넥슨(1조1157억원)에 앞섰다.
대표작 ‘PUBG: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가 서비스 8주년에도 성장세를 유지한 덕이다. 배틀그라운드는 올해 PC 버전 동시 접속자 수가 130만명에 육박하는 등 전성기를 방불케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동안 크래프톤 매출의 90% 가량을 책임지며 리스크 취급을 받기도 했으나, 이제는 도리어 향후 수십년을 거뜬히 책임질 안정 자산으로 평가받는 분위기다.
장 의장은 “시장에서 매번 배틀그라운드 원 툴(One Tool)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차기작이 절실해지니 그간은 내부 경영진 사이에서도 배틀그라운드를 ‘식은 밥’처럼 취급하는 분위기였다”며 “글로벌 메가 IP의 희소성과 가치를 내부에서도 덜 인식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펍지(PUBG)라는 브랜드에 전세계 고객이 지불하는 금액을 따지면 9조원 전후다. 하나의 브랜드에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일”이라며 “작년 배틀그라운드 사용자가 오히려 더욱 늘었다. 장기적인 IP 생명력에 확신을 느낀 기회가 됐다”고 부연했다.
◆“3년간 몸 만들기… 펍지 비견할 메가 IP 발굴”
장 의장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지난 3년간 수백 차례 타석에 섰다. ‘볼(Ball)'을 골라내듯 자체 개발과 투자, 신사업 확장을 신중히 준비하며 성공적인 출루를 기다렸다. 올해는 이 과정에서 길러낸 선구안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결실을 맺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는 앞선 신년사에서 빅(Big) 프랜차이즈 IP를 내외부에서 발굴해, 크래프톤을 향후 5년 내 매출 7조원을 달성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장 의장은 “글로벌하게 IP를 확보하고 있지만, 자체 IP가 없으면 제대로 된 이익률을 못 낸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펍지 같은 메가 IP가 하나 더 있거나 그에 못지 않은 경쟁력이 있는 IP가 2~3개 정도는 추가돼야 가능한 목표”라면서도 “자신감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투자 및 인수를 하기 위해 만난 게임 스튜디오만 400여곳이다. 재작년은 300여곳 초반이다. 변화를 위한 준비는 오래 전 시작된 셈”이라며 “김 대표의 공언은 그간의 과정을 하나된 방향으로 만들기 위한 어떤 선언에 가깝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흥행 산업 특성상 게임 10개를 론칭해도 1개가 채 성공하기 힘들다. 결국 포트폴리오를 늘리려면 타석에 많이 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크래프톤은 가장 글로벌하게 움직인 회사다. 적어도 국내에선 이처럼 많은 게임사를 만난 회사가 없다”고 덧붙였다.
◆ 수년간 기른 선구안, 인조이 탄생으로… “메가 IP 잠재력 확신”
외부에서의 분주한 움직임 못지 않게, 내부에서도 계속해 타석에 섰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28일 출시돼 큰 성과를 거둔 신작 ‘인조이’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쌓은 선구안의 결실이다.
인조이는 스팀에서 얼리 액세스(앞서 해보기)로 출시된 지 일주일 만에 100만장을 판매하며, 최근 3년간 출시된 국산 패키지 게임 중 가장 빠르게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이는 100만장 판매에 16일이 걸렸던 배틀그라운드보다도 빠른 속도다.
장 의장은 “김형준 대표(인조이 스튜디오)가 맡았던 ‘에어’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간 뒤 도전한 게임이 인조이”라며 “형준님도, 회사도 타석에 많이 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하고, 도전하고 또 버틸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어 프로젝트로 수백억을 날렸지만, 결국은 크래프톤 발전에 중요한 디딤돌이 된 셈”이라고 부연했다.
장 의장은 인조이 흥행으로 단순 매출 이상의 수확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조이 출시까지 내부의 우려도 적지않았다. ‘심즈’의 모조품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게임을 필요로하는 고객은 있을까, 하는 고민 등이었다”며 “100만장 판매로 얻은 진정한 수확은 인조이를 사랑해주는 고객이 명확하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이다. 인조이에서 ‘GTA’를 연상하는 유저도 있다. 인조이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의 관건은 리더십이 인조이의 미래를 강하게 믿고 있느냐다. 그러면 되지 않을 것도 된다. 김형준, 김창한의 확신과 기대감이 크고 명확하기 때문에 글로벌 메가 IP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그 때는 우리 회사 가치도 재평가 받아야 마땅하다”라고 첨언했다.
북미와 인도 시장은 크래프톤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전망이다.
장 의장은 “소비 시장과 대중 문화의 주류가 북미라는 것은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테라’부터 시작해 15년간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현재 내부에 북미 시장을 겨냥한 파이프라인도 있다. 북미 시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매년 6~7% 성장하고 있는 인도는 향후 20년 후를 바라본 이머징(Emerging Market) 마켓이다. 지금의 숫자도 나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투자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퍼블리싱을 통해 시장을 확장할 계획이다. 파이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호흡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롱텀(장기적)을 갖고 꾸준히 투자하면 보상이 있을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창의성과 다양성이 IP 핵심… 성수동 클러스터로 극대화
성수동 클러스터는 크래프톤의 메가 IP 발굴 전초기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크래프톤은 앞서 성수동 인근 부지를 매입해 복합 건물을 건설 중이다. 이마트 성수점 부지에는 2028년 지하 8층, 지상 17층 규모의 오피스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에 앞서 2027년에는 인근에 다수의 개발 스튜디오 건물들이 먼저 자리 잡아 클러스터 형태를 갖추게 된다.
장 의장은 크래프톤이 지속적으로 메가 IP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게임산업은 흥행 산업인데다, 장르와 플랫폼별로 재미의 결이 다르고 지역마다 고객 문화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성수동 클러스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장 의장은 “처음 설계할 때부터 큰 건물 하나에 모든 크래프톤 가족을 모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곳에 모이면 저희 업의 다양성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며 “아주 작은 팀이 호흡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부터 펍지만한 글로벌 메가 IP를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는 큰 조직까지, 다채로운 조직이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중 HQ(본사)는 크래프톤이 추구하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공간 설계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3개 층 단위로 공간을 통합할 수 있는 구조와, 필요에 따라 쉽게 내부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갖췄다. 엘리베이터뿐만 아니라 계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직원들이 보다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공간 설계는 전신인 블루홀 시절 마련한 ‘10억 계단’에서부터 이어진 소통 중시 문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2018년 당시 블루홀은 판교 알파돔타워로 둥지를 옮기면서, 여러 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설치해 팀 간 우연한 만남과 소통이 이뤄지도록 한 바 있다.
◆사업 다각화 추진… 실탄 앞세워 M&A 역량 누적
크래프톤은 코어 비즈니스(게임)를 중심으로 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숏폼 드라마 플랫폼 회사인 스푼랩스, 인도 핀테크 기업 캐시프리페이먼츠 투자가 대표적이다.
장 의장은 “중요한 점은 코어 비즈니스와의 시너지다. 숏폼 기업에 투자한 것도 우리의 IP가 미디어로, 미디어가 우리 IP로 확장될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라면서도 “2개 이상의 나라에서 사업이 성장할 수 있는 독립된 가능성도 분명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포트폴리오 확장 관점에서만 접근하기보다는 투자 그 자체로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장 의장은 수조원 규모의 메가 딜(mega deal)보다는 1000억원에서 2000억원 수준의 거래를 지속하며 M&A(인수합병) 역량과 경험을 누적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IPO(기업공개)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지난 3년간 제대로 사용한 적이 없다. 실적도 나쁘지 않고 대출을 한 적도 없어 자금을 투입할 여력은 크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자산 가치가 내려간 지금은, 공교롭게도 크래프톤에 있어서는 (투자하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AI 원천 기술 확보 가능성 타진… ‘거인’과 함께 간다”
크래프톤은 IT산업의 최전선에 선 생성형 AI(인공지능) 시장도 다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AI 기업들과 협력해 게임의 재미를 더욱 향상시키는 데 집중해왔으나, 최근에는 원천 기술 확보와 확장을 목표로 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장 의장은 “AI를 주로 게임 제작 과정을 혁신하고, 게임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는 데 활용해왔다. 그러나 지난 2~3년 동안 자체적으로 우수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고, 인조이에 적용한 AI 기술들이 큰 호응을 얻는 등 제법 성과를 냈다”며 “이제는 커머셜라이징(상업화)을 위한 조직적 역량도 자리를 잡아, 다소 욕심을 내는 분위기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부 기술을 응용만 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이제는 원천 기술에도 도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봐주시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실제, 크래프톤은 엔비디아와 함께 체화 AI와 휴머노이드 로보틱스분야를 포함한 차세대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이같은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장 의장은 “게임은 현재 세상에 있는 걸 가상 공간으로 가지고 가기 위한 노력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관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세상에 인공지능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엔비디아에 모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로서는 거인의 어깨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다. 엔비디아와 크래프톤 실무진 간 협력이 생산적이었기에 가능한 협업”이라며 실무진에게 공을 돌렸다.
◆게임산업 힘은 허리에서 나와… 정부 직접 지원보단 펀드 확장해야
이날 장 의장은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산업을 지탱할 중소 게임사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게임산업이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 시기”라고 지적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보면 여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을 넘어서거나 따라잡기 위해서는 게임 생태계가 풍성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허리 역할을 할 중소형 게임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크래프톤을 위한 지원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정부의 직접 지원은 비효율적이다. 중소형 게임사를 지원하는 투자 펀드를 많이 형성하고 출자 비율을 늘려야 한다. 영화나 K-팝과 달리, 게임사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는 국내에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다만 장 의장은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제작비 세액 공제에 대해선 “자칫 잡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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