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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게임정책 과제②] ‘주 52시간제 유연화’에 엇갈리는 시선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오병훈 기자] 윤석열 정부가 도입하려고 하는 ‘주 52시간제 유연화’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정부와 기업, 노동자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는 장시간 노동이 요구되는 게임기업도 마찬가지다.

게임기업은 중국에게 추격을 허용한 원인 중 하나로 주 52시간제을 지목한다. 신작 출시 일정이 더뎌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에 전사 재택을 실시하게 되면서, 팀 회의가 중요한 게임 개발 속도는 더욱 늦어지게 됐다.

노동자들도 이런 상황엔 공감하지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과로사까지 내몰리는 환경을 우려하고 있다. 라이브 서비스는 24시간 돌아간다. 꾸준한 신작 개발도 따라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기간 장시간 노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조율점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 입장은? “미래지향적인 노동산업 만들 것”=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110대 국정과제에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완화’가 포함됐다. 지난 5월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주 52시간제 근로제 개편을 수면 위로 꺼내자 정보기술(IT)업계 노사 촉각은 더욱 곤두세워졌다. 이영 장관은 게임·소프트웨어(SW) 기업인과 만나 주 52시간제 등 노동정책 유연성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재 ‘주(週)’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시간을 ‘월(月)’ 단위로 확대하는 등 주 52시간제 운영 방식을 유연하게 개편하는 내용 등을 담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지난달 발표했다. 구체적인 안은 민간 전문가 연구회를 통해 논의될 예정이다.

현재 주 12시간까지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환산할 경우 약 52.1시간(12시간×4.345주)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최대 연장근로 시간을 한 주에 몰아서 사용하면 일주일에 92.1시간(40+52.1시간) 근무할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매우 극단적인 예라는 것이 정부 측 입장이다.

박종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은 13일 열린 ‘윤석열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대응 토론회’에서 “1주일 92시간 근로가 가능해진다는 계산은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 등 근로자 건강보호 조치를 병행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게임산업계, 유연화 원칙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근로시간 유연화 등 노동시장 개혁 과제를 피력하고 있다. 게임사 대표를 포함한 주요 사측 관계자들은 이 부분에서 정부와의 결이 같다. 기업경영에 지장이 없도록 산업 특성별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엔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이 도래한 것이 컸다. 전사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게임 개발 특성상 팀이나 그룹 회의가 많았기에 주요 신작 출시 일정은 점차적으로 더뎌지기 시작했다. 신작을 내보내야만 매출 상승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업 입장에선 코로나19라는 변수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주 52시간제 관련 근로기준법도 게임산업 특성에 적합하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 관계자 노동정책 유연성에 관한 입장은 원칙적으로 환영한다”면서도 “근무제도 변화 이외에도 채용 장려금 지급 혹은 개발 인력에 대한 교육 증대,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등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시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과로사 환경 확대” 게임 노동자 연일 비판=반면, 게임업계 근로자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게임업계 개발자 및 IT 개발자 일부는 과거 12주 동안 불규칙한 야간근무와 초과근무를 해온 20대 개발자 돌연사 등으로 인해 게임업계 노동환경 논의가 촉발됐었던 만큼, 주 52시간제 개편 논의 자체를 제고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우려하는 건 크런치 모드 부활이다. 크런치 모드란 신작 출시나 업데이트 시즌을 앞두고 야근과 연장근무가 포함된 집중 업무 기간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근무 외 시간을 회사에서 쓰고, 숙식하며 연장 근무를 하는 식이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데, 노동자 생명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노동자를 과로사로 내몰고 있다”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주 92시간제 도입이 아니라, 불법과 편법인 포괄임금제를 규제하고 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저지를 넘어,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정치권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는 법제도 개선과 함께 불법을 방치하는 노동부에 대한 관리 및 감독을 통해 가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유연화 vs 노동 개악…대안은 어떤게 있나?=법으로 유연화가 도입된다고 해도 게임기업들은 당장 이렇다 할 입장을 취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구인난을 겪고 있을 정도로 개발자가 귀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짜 노동을 야기시키는 포괄임금제 등 임금협상 체계는 노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유연화 대안으로는 포괄임금제 폐지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민주노총 화섬노조 IT 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성남 지역 IT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여전히 60% 이상이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오세윤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IT위원회 위원장(네이버지회 지회장)은 “IT업계에서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건강권 보호도 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홍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유연화는 개인 권리가 과도하게 침해되는 부분이 있다”며 “기업이 유급 휴가를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법적으로 마련된 근로자 대표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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