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한 주간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 소식을 소개하는 ‘주간 블록체인’입니다.
이번주에는 가상자산 역사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국가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것입니다. 비트코인이 법정화폐화된 것은 세계 최초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엘살바도르의 소식을 획기적인 이벤트로 보고,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더불어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비트코인의 법정화폐화를 추진한 과정이 선진적이라는 평가도 나오는 모습입니다.
엘살바도르가 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는지, 그리고 엘살바도르의 결정이 가상자산 업계에 어떤 점을 시사했는지 이번주 <주간 블록체인>에서 함께 다뤄보겠습니다.
◆엘살바도르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나
엘살바도르 의회는 지난 9일(현지시간) 비트코인(BTC)을 법정화폐로 승인했습니다. 비트코인이 국가 법정화폐로 쓰이는 첫 사례입니다.
이날 엘살바도르 의회는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제출한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승인안을 과반 찬성으로 가결했습니다. 총 84표 중 64표의 찬성 표가 나왔고요. 앞으로 엘살바도르의 모든 상점에서는 물건 가격을 비트코인으로도 표기하게 됩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즉각 이 같은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는 의회 모습이 담긴 영상을 게재하며 비트코인과 엘살바도르 국기 이모지를 나란히 올리고,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현재 부켈레 대통령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도 가상자산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현하는 ‘레이저 아이’ 사진입니다.
앞서 부켈레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마이애미서 열린 ‘비트코인 2021’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화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4일만에 그 뜻이 실제로 이뤄진건데요, 법안 제출 배경에 대해선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제망 밖에 있는 이들에게 금융 접근성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발언에서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엘살바도르는 국민의 70% 이상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든 국가입니다. 즉, 현재로선 금융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내전으로 금융 시스템이 무너져 국민 대부분이 은행계좌나 신용카드가 없고 현금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이런 엘살바도르의 상황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죠.
금융 시스템뿐 아니라 경제주권 면에서도 어렵습니다. 엘살바도르는 자국 화폐인 콜론을 법정화폐로 사용하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포기하고, 지난 2001년부터 달러를 사용해왔습니다. 때문에 경제주권을 행사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죠.
아울러 엘살바도르는 GDP(국내총생산)의 상당 비중이 해외에서 들어오는 돈입니다. 해외에서 엘살바도르로 송금하는 돈에 생활을 의존하는 국민들이 많은데요, 때문에 기존 금융 시스템 없이도 돈을 송금할 수 있는 수단으로 비트코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엘살바도르의 결정을 이끈 것은 가상자산 지갑업체 ‘스트라이크’입니다. 스트라이크 창업자 잭 맬러스가 마이애미 비트코인 컨퍼런스에서 한 발표를 들어보면 엘살바도르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잭 맬러스는 발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모두에게 똑같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달러를 찍어내는 연준의 행위는 의도치 않게 큰 효과를 낳는데, 그 중에서도 개발도상국에 악영향을 미친다. 잘 보이지 않는 인플레이션이 금리 인상을 초래하고, 개발도상국의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의 발전을 저해한다”.
◆‘비트코인의 법정화폐화’를 보는 시선들…“탈중앙화와 멀어져도 긍정적”
가상자산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큰 이벤트인만큼, 이번 비트코인의 법정화폐화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철학적인 면에선 비트코인이 법정화폐가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백서에서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탈중앙화된 전자지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라고 명시했죠.
이런 면에서 보면 비트코인이 국가가 공인한 화폐가 되는 게 ‘탈중앙화’에 가깝진 않습니다. 국가라는 일종의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의존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비트코인의 쓰임새가 하나 더 늘어난 만큼, 긍정적인 일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한 국가의 통화정책에 따라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세상에서 비트코인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죠.
특히 부켈레 대통령이 비트코인의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만들어둔 점이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더합니다.
우선 국민들이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으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엘살바도르 개발은행 내에 비트코인신탁을 만듭니다. 비트코인으로 물건값을 받은 소상공인들이 달러와의 교환을 원하면 바로 환전해줄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이죠. 우선 1억 5000만달러를 예치해두고, 추후 계속 자금을 확보할 예정입니다.
또 예전부터 비트코인의 단점으로 지목돼왔던 환경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화산 지열을 이용해 비트코인을 채굴하겠다는 뜻을 밝힌 건데요, 부켈레 대통령은 국영 지열 발전소인 ‘라지오’에 비트코인 채굴 설비를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트위터 스페이스서 ‘비트코인의 혜택’ 설명한 대통령
엘살바도르의 시도가 비트코인의 역사를 새로 쓸지, 아니면 그냥 정치쇼로 남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 컸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가상자산을 어떻게 규제할지 골몰하는 모습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엘살바도르는 정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쓸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비트코인을 법정화폐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후, 부켈레 대통령은 트위터의 음성채팅방인 ‘스페이스’에서 직접 비트코인의 혜택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해당 방에는 잭 도시 트위터 CEO를 비롯한 가상자산 업계 인플루언서들이 함께 했고요. 단순히 개발도상국의 '탈 달러'라고 보기 어려운, 분명 선진적인 시도입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돈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