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한 주간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 소식을 소개하는 ‘주간 블록체인’입니다.
이번주는 가상자산 시장이 아닌 해외 주식 시장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게임스탑’. 한 주 동안 너무 뜨거운 이슈였기에 다들 들어보셨을텐데요,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헤지펀드 등 기관을 상대로 한 판 승부를 벌였죠.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세력의 표적이었던 ‘게임스탑’ 종목의 주가를 끌어올리면서 기관 투자자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후 가상자산 시장에도 게임스탑 바람이 분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습니다. ‘도지코인(DOGE)’ 때문입니다. 우선 게임스탑 현상을 주도했던 커뮤니티 ‘월스트리트베츠’를 모방해 ‘사토시스트리트베츠’가 등장했는데요, 여기서 사토시는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들이 도지코인을 가상자산 시장의 게임스탑으로 만들기로 하면서 도지코인 가격이 800% 넘게 폭등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본질을 들여다보면, 가상자산 시장에 게임스탑 바람이 분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주식 시장에 ‘블록체인 바람’, ‘탈중앙화 바람’이 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거대 자본 세력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탈중앙화’를 중시하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이미 당연시되던 것입니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등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기반으로 등장한 비트코인은 월스트리트를 포함한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은행 같은 중앙기관이 없더라도, 네트워크 참여자들에 의해 작동하는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죠.
이 비트코인의 정신은 탈중앙화 금융, ‘디파이(De-fi)’로 이어집니다. 기관 투자자에게 유리한 주식시장과 달리,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인 디파이는 상대적으로 공정한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에 부는 ‘탈중앙화 바람’ 덕에 비트코인과 디파이의 가치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주 [주간 블록체인]에서는 주식 시장에 스며든 탈중앙화 철학을 비트코인, 그리고 디파이로 나누어 조명해보겠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왜 트위터 프로필에 ‘#Bitcoin’을 추가했을까
지난 29일 가상자산 시장은 다시 뜨거웠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트위터 프로필에 비트코인 해시태그(#Bitcoin)를 추가하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약 한 시간만에 16% 넘게 폭등했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 해시태그를 추가하기 며칠 전, 머스크는 게임스탑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월스트리트베츠’ 사이트 주소를 공유하면서 ‘게임스통크(Gamestonk, stonk는 맹폭격)’이라는 트윗을 올렸는데요. 게임스탑 주가 랠리, 즉 개인 투자자들의 저항을 지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머스크의 트윗으로 게임스탑 주가는 더 뛰었습니다.
이런 머스크의 ‘지지 의사’는 비트코인으로 옮겨갑니다. 프로필에 비트코인을 추가한 날, 머스크는 “돌이켜보면 그건 불가피한 것이었다(In retrospect, it was inevitable)”는 트윗을 함께 남겼습니다. 비트코인의 등장은 불가피한 것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게임스탑 주가 랠리를 지지한 것처럼 비트코인에도 힘을 실어준 것입니다.
이는 머스크가 그동안 몰랐던 비트코인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왜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항하는 존재가 나왔는지, 사토시 나카모토는 왜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을 지향했는지 말입니다. 지금 주식시장에 몰아치는 저항의 움직임은 이미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에 있던 것이고, 그래서 돌이켜보면 비트코인의 등장은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것이죠.
머스크의 강력한 한 방 덕분에 가상자산 시장도 잃어가던 가치를 되찾게 됐습니다. 머스크의 트윗으로 바뀐 건 비트코인 가격만이 아니었는데요, 비트코인 선물 시장에서 4300억원 규모 ‘숏 포지션’이 청산됐습니다. 숏 포지션의 의미는 주식 시장과 같습니다. 비트코인의 하락세를 예상하고, 일단 자산을 빌려서 매도한 뒤 후에 낮은 가격에 매수해 상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상자산 시장의 공매도인 것이죠.
태초의 비트코인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지향했지만, 사실 요즘 비트코인 시장은 기관 투자자들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가격을 올리는 것도, 내리는 것도 헤지펀드와 대형 채굴 기업들이었는데요, 최근 헤지펀드들이 비트코인 숏 포지션을 늘리면서 이날도 트위터에서 헤지펀드에 대항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머스크가 강력한 한 방을 날리면서 비트코인 공매도 세력이 손해를 보게 된 것이죠. 앞서 머스크는 ‘도지코인’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도지코인이 가상자산 계의 게임스탑이 되도록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주식시장에 탈중앙화 바람이 불면서 비트코인의 가치가 다시금 주목받게 됐고, 비트코인 역시 잃어가던 탈중앙화의 가치를 다시 찾게 된 셈입니다.
◆디파이 업계에는 ‘로빈후드’가 없다
이번 게임스탑 현상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분노를 더 촉발시킨 존재가 있었습니다. 미국 증권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입니다.
로빈후드는 지난 28일(현지시간) 게임스탑을 비롯해 주가가 폭등한 종목들의 매수를 차단했습니다. 로빈후드는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이기도 한데요, 때문에 개인 투자자는 게임스탑을 매수할 수 없지만 헤지펀드는 매수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고, 개인 투자자들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카르텔이라는 지적까지 나왔죠.
그런데 로빈후드 덕분에 주목받은 존재가 있습니다. 가상자산 시장의 ‘탈중앙화 거래소(DEX)’입니다.
중개자 없이 P2P(개인 간)로 거래하는 곳,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 상 스마트컨트랙트로 이뤄지기 때문에 누군가를 신뢰할 필요도 없는 곳. DEX에는 매수 버튼을 차단할 수 있는 존재 자체가 없습니다.
이에 대표적인 DEX인 유니스왑이 발행한 토큰, 유니(UNI)의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습니다. 유니 가격은 이번주에만 84% 증가했는데요, 포브스도 “로빈후드가 게임스탑 매수를 차단하면서 탈중앙화된, 검열받지 않는 거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예시로 유니스왑을 들었습니다.
DEX는 탈중앙화 금융, 즉 디파이 서비스의 일종입니다. 주식 시장에 분 탈중앙화 바람 덕에 상대적으로 디파이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디파이 서비스 메이커다오의 남두완 한국 대표는 “로빈후드와 달리 디파이 서비스에서는 이용자의 거래를 제한할 수 없다”며 “주식 시장에선 보통 기관들만이 공매도나 레버리지 기법을 이용하지만, 디파이에서는 개인 이용자들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디파이 서비스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블록체인 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주식 시장과 비교되는 점입니다.
남 대표는 “기존 주식 시장에서는 공매도를 해도 담보를 무엇으로 하고 있는지 청산가는, 얼마인지등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데 디파이에서는 모두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게임스탑 사태에서 탈중앙화를 찾다
사실 탈중앙화 논의 만큼 추상적인 게 없습니다. 디파이 서비스도 결국 사람이, 기업이 만드는 것인 만큼 완전히 탈중앙화됐다고 보긴 어렵죠.
그럼에도 디파이와 비트코인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게임스탑 사태가 기존 금융 시스템이 소수의 기관에 집중돼있다는 사실을 알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금융과 투자 시장이 더욱 분산화되어야 하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 널리 퍼졌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의 저항이 이어지면서 현재는 미국 의회도 이에 뛰어든 상태인데요, 셰러드 브라운 신임 상원 은행위원장은 “이제 경제가 단지 월스트리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해 작동할 수 있도록 SEC와 의회가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비트코인과 디파이가 ‘모든 이를 위해 작동하는 금융 시스템’으로서 어떻게 기능할지 계속 주목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