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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돌 맞은 KISTI 슈퍼컴 ‘누리온’, “국가 전략무기로 확대”

KISTI의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KISTI의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슈퍼컴퓨터는 단순히 빠른 계산 결과를 제공하는 과학기술 중심의 도구라기보다 국가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전략 무기입니다. ‘누리온’을 통해 소재, 친환경 에너지, 바이오, 우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누리온’은 지난 2018년 12월 3일 정식 개통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 5호기다. 시스템 구축과 제반환경시설에 약 9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으며, 57만코어가 탑재된 크레이(HPE에 인수) CS500 제품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염민선 KISTI 슈퍼컴퓨팅응용센터장은 21일 누리온 서비스 운영 2년차를 맞이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슈퍼컴퓨터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누리온은 연산속도 25.7 PF(페타플롭스), 1초에 2.57경번의 연산이 가능한 슈퍼컴퓨터다. 2.57경번은 빛이 1미터 움직이는 아주 짧은 시간에 8570만번 실수 연산을 할 수 있는 속도다. 현재 전세계 슈퍼컴퓨터 ‘톱500’ 순위에서 17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입 시점이였던 2018년만 해도 11위였지만 성능이 향상된 새 슈퍼컴퓨터들이 순위권에 진입하면서 6단계 하락했다.

염 센터장에 따르면, 2018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누리온을 통해 163개 기관, 3037명의 연구자여 명의 연구자가 이미 437만3664건의 작업을 수행했다. NSC급 저널 12편을 포함해 총 275건의 학술논문 발표에도 기여했다. 서비스 제공시간만 61억 시간 이상에 달한다. 주로 대학과 연구소, 산업체, 정부 등이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재 분야에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정훈 박사가 미국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인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흡착제를 개발하는데 누리온을 활용했다.

또, 울산과학기술원 이준희 교수 연구팀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를 1000배 이상 향상 시킬 수 있는 소재를 찾는데 누리온을 활용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연구팀은 산화 하프늄(HfO) 에 있는 산소 원자에 전압을 가하면 원자간 탄성이 사라지는 물리 현상이 일어남을 발견했는데, 이를 이용하면 메모리 반도체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성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되기도 했다.

이밖에 바이오 분야에선 이화여자대학교 최선 교수와 서울대학교 이정원 교수 공동 연구팀이 간암세포의 생존에 필수적인 아미노산인 ‘아르기닌’이 세포질로 이동하는 것을 저해함으로써 간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기술을 누리온을 통해 개발했다.

무엇보다 누리온은 최근 코로나19 연구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백악관과 IBM이 주도하는 국제 HPC(고성능컴퓨팅) 컨소시엄에 43번째로 합류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검출과 억제, 치료에 관한 연구에 자원을 공급하고 있다.

황순옥 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은 “코로나19가 각자 쓰기도 부족한 슈퍼컴퓨터 자원을 공유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이같은 비정상이 정상(뉴노멀)이 됐으면 한다”며 “국제 HPC 컨소시움 외에도 누리온을 활용해 2만개 이상의 신약물질 가운데 코로나 바이러스 억제효과가 있는 50개 정도의 후보물질을 찾고 이를 검증하는 작업을 서울대 화학공정신기술연구소에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슈퍼컴퓨터 경쟁력은 미국과 중국, 일본 등에 비해선 뒤쳐져 있다. 지난 6월 전세계 1위 슈퍼컴퓨터로 선정된 일본의 ‘후가쿠(Hugaku)’는 누리온보다 노드수와 성능이 약 20배나 높다. 일본은 무려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전략적으로 후가쿠를 개발했다. 또, 전세계 500대 슈퍼컴퓨터 가운데 중국은 절반에 달하는 226대를 보유한 반면 우리나라는 고작 3대에 불과하다.

특히 현재 전세계 슈퍼컴퓨팅 업계의 눈은 ‘엑사스케일(exascale)’에 쏠려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연합 등이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염민선 센터장은 “슈퍼컴퓨터는 과학연구를 넘어 국가안보와 경제 등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무기로 활용되고 있다”며 “경제성과 혁신성 사이에서 엑사스케일 슈퍼컴을 개발하는 것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슈퍼컴퓨터가 국가의 경쟁력 자체를 끌어올릴 수 있는 핵심 도구인 만큼, 국가차원의 전체 인프라 활용 로드맵을 세울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당장 누리온 시스템 고도화와 함께 별로 구축한 GPU 시스템 ‘뉴론시스템’ 증설을 통해 효율적인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KISTI는 ‘누리온’에 이은 슈퍼컴퓨터 6호기에 대한 계획도 공개했다. KISTI는 5년 주기로 새로운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고 있다. 6호기는 계획대로라면 2023년 구축될 예정이다.

홍태영 KISTI 슈퍼컴퓨팅인프라센터 선임연구원은 “5호기 누리온의 경우, 예타(예산타당성검토) 문제로 기존보다 10년 정도 지연이 됐는데, 6호기는 당장 내년부터 예산작업을 시작해 내후년에는 제안요청서(RFP)와 아키텍처 구성 작업을 끝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를 위해선 관계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그는 “6호기는 특정 아키텍처에 의존성이 안 되는 방향으로 설계해 계산과학분야 뿐 아니라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까지 포괄하는 환경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석한 최희윤 KISTI 원장도 “KISTI는 데이터 수집부터 컴퓨팅, 분석을 통한 생태계를 마련하고 있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정부의 디지털 뉴딜 정책과 맞물려 슈퍼컴퓨터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국가경쟁력 강화에 핵심 역량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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