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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투자은행의 심리학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세상은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움직인다. 이 가운데 시간은 묘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고, 미래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나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측한다는 건 미지(未知)의 영역이다. 그 때문에 미래를 엿보려는 인간의 욕망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반도체 고점 논란도 비슷하다. 누구는 ‘갈 데까지 갔다’라고 주장하고, 다른 누구는 ‘아직 멀었다’라는 반론을 펼친다. 올라가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장은 흘러왔다.

시계를 뒤로 돌려서 지난해 11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사업을 부정적으로 예상했다. 최근에도 과열을 우려하며 투자 전망을 ‘주의’로 낮췄다. 시장은 출렁였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곤두박질을 쳤다. 일각에서는 잊을만하면 나오는 ‘작용-반작용’이라며 평가절하했다. 기관은 팔았는데, 개미가 사들인 이유다.

모건스탠리는 ‘수요가 감소하면 심각한 재고 조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도 했다. 반대로 수요에 변화가 없으면 앞으로도 같은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때에 따라서 성장세가 한풀 꺾일 것을 참작했을 수 있다. 각 업체가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고 내년에는 이전보다 확실히 공급이 커진다. 수요가 그대로여도 자연스럽게 열기가 이전만 못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극, 특히 ‘선(善)’보다 ‘악(惡)’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투자자 관점에서 호황은 선이고 하락은 악이다. 투자은행의 의견을 두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그들의 주장이나 리포트에 자꾸 눈길이 간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투자은행의 주장은 점쟁이의 ‘바넘 효과(Barnum effect)’와 비슷하다.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다’는 뜻.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애매한 부분을 언급해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심리학적 현상이다.

바넘 효과가 무서운 것은 불발탄에 섞인 진짜 총알이다. 제대로 맞으면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이런 장점을 가장 잘 아는 집단이 투자은행이다. 시장은 이벤트가 필요하다. 모두가 ‘예’를 외칠 때 ‘아니오’라고 말하면 그만큼 주목도가 커진다. 그러니 그들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방향을 제대로 알아채야 한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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