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얼마 전 시장조사업체에서 자료가 하나 발표됐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전 세계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인텔을 제친 이후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점도 조명됐다. 사실상 선두 굳히기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언론에서는 긍정적 메시지가 쏟아졌다.
물론 축하할 일이다.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D램·낸드플래시 중심의 반도체 호황 덕분이라지만, 행운도 준비된 자에게만 다가오는 법이니 말이다. ‘운도 실력’이다.
그런데 일선에서 물러난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993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인텔을 제치고 반도체 업계 1위에 올라간 것을 축하하는 인사를 받고 “재수가 좋았다”라고 답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왜일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 재수(財數)라는 말이 단순히 운(運)을 뜻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텔과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다루지만 제품 구성에 차이가 있다. 메모리와 비(非)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훨씬 크다. 그런데도 밖에서는 지난날 각 업체의 순위가 얼마였다는 것만 더 집중한다. 도드라지는 수치에만 끌려다니는 모양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나 무역분쟁, 수요 감소 등으로 얼마든지 위기는 닥칠 수 있다. 좋은 날(호황)이 몇 년 남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때 가서 인텔에 다시 역전당했다는 내용으로 떠들썩거리며 흥분할 텐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는 시장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완전히 새로운 전략과 제품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성장이 주춤하면서 전방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교체주기는 길어졌고 차별화는 어려워졌으며 고객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권 회장이 언급한 재수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가장 비극적인 날의 일상과 아이러니함을 나타낸 반어법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1위를 해서 기쁘기보다 두렵고 이제까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니 호들갑 좀 그만 떨었으면 좋겠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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