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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10세대급 LCD 투자, 삼성디스플레이의 고민

[전자부품 전문 미디어 인사이트세미콘]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인 BOE가 10.5세대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이후 삼성디스플레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BOE를 따라가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그대로 있자니 앞으로 다가올 초대형 TV 시장에선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 지금 삼성디스플레이의 모습이다. 그깟 자존심 뿐이라면 한 번 상하고 말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10.5세대 공장을 짓고 LCD 패널을 만든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팔 것인가? 한국에 공장을 짓고 거기서 만든 패널을 중국으로 수출하려면 관세를 5%나 물어야 한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중국 쑤저우에 패널 공장을 지은 것도 관세를 피해가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가 삼성디스플레이 물량을 완전히 받아줄 리도 만무하다. 각자 살기 바쁜 마당에 남을 돌 볼 여지는 단언컨대 없다. 저렴하고, 품질이 좋으면 대만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디에서라도 부품을 가져와서 쓰겠다는 것이 최근 삼성전자 세트 사업부문의 입장이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가 생산한 TV에서 삼성디스플레이 패널 비중은 50% 수준이다.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사업본부가 내놓는 TV 중 LG디스플레이 패널을 탑재한 제품 비중은 90%가 넘는다. LG보다 삼성의 내부 거래가 더 어렵고, 혹독하다.

과거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자 LCD 사업부)가 경쟁사들이 다 6세대로 갈 때 혼자서 7.5세대로 직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TV 시장 1, 2위를 다투던 소니가 합작사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총수도 ‘소니와 합작하면 배울 것이 많다’며 힘을 실어줬었다. 회사 안팎으로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7.5세대 투자 후, 삼성은 40인치대를 석권하며 세계 1위 지위를 공고히 했다.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투자 결정을 한다 해도 앞서 언급한 여러 문제로 인해 그룹 수뇌부에서 승인을 내 줄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지금 LCD 시황은 내리막을 걷는 중이다. 내년까지 이 하향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BOE는 10.5세대 공장의 전체 투자 금액 약 7조원 가운데 10분의 1만 낸다. 정부의 눈먼 돈을 쉽게 쉽게 가져다 쓰는 BOE와 온전히 나의 돈을 태워야 하는 삼성디스플레이의 투자 환경은 근본부터가 다르다. 이러한 관점을 갖고 삼성디스플레이가 어떤 방향으로 시설투자를 진행해 나갈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은, 당사자들은 골치가 아프겠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선 흥미로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좋은 사례를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1995년 델컴퓨터의 구매 담당 임원은 이상완 상무(초대 삼성전자 LCD총괄사장)가 제시한 12.1인치 LCD 도면을 면전 앞에서 찢어버렸다. 그는 샤프와 같은 11.3인치 제품을 가져오라 했다. 삼성이 12.1인치를 내세운 이유는 차별화였다. 그 때 삼성은 후발주자였고, 11.3인치를 따라가면 샤프의 ‘아류’ 그 이상은 될 수 없었다. 델은 지금의 애플과 같은 당대 최대의 고객사였다. 큰 수모를 당한 이상완은 “그래도 우리는 12.1인치로 간다”고 다짐했다. 차별화를 향한 삼성의 뚝심은 통했다. 또 다른 PC 시장의 강자, 도시바가 삼성의 제안을 받아들여 12.1인치 패널을 채용한 것이다. 델도 도시바를 따라 12.1인치 제품을 내놓는다. 결국 12.1인치는 세계 노트북 시장의 표준 사이즈가 됐다. 삼성은 이를 발판으로 세계 첫 LCD 1위 업체로 이름을 올렸다. 나는 이 사건을 삼성전자의 사사(社史)를 통해 접했다. 어쩌면 삼성디스플레이의 임직원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이러한 저돌적 자신감과 실행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삼성은 선배들이 남겨놓은 유산이 적지 않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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