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미국 샌디에이고 소재 퀄컴 중앙 본사 건물 로비 한쪽에는 ‘특허의 벽(Patent Wall)’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벽에는 퀄컴과 이 회사 소속 직원들이 출원한 수백여장의 기술 특허 증서 사본이 진열돼 있다.
진열된 특허 가운데 첫 번째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무선통신 원천 기술에 관한 것이다. 창업자인 어윈 제이콥스는 이 기술을 개발해 퀄컴을 세계적 IT 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모두 이 무선통신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퀄컴이 이처럼 특허 증서를 본사 로비에 자랑스럽게 진열하는 이유는 혁신 기술을 중시하고, 개발을 독려하기 위함일 것이다.
퀄컴 본사를 방문한 날, 공교롭게도 중국 정부가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을 퀄컴에 부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퀄컴이 중국 내 제조업체들로부터 스마트폰 가격의 5%에 달하는 ‘약탈적’ 특허 수수료를 받아온 것이 특허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중국 정부는 판단했다. 중국은 아울러 이 수수료를 낮추라고 퀄컴에 지시했다. 퀄컴은 과징금 부과 및 수수료를 낮추라는 중국의 지시를 그대로 수락했다.
퀄컴은 독점 기업이 맞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스마트폰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에서 퀄컴은 지난해 매출액 점유율이 52.9%에 달했다. AP 시장에서 퀄컴의 점유율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앞선 모뎀 기술력 덕분이다. 퀄컴은 롱텀에볼루션(LTE) 통신 기술의 표준화를 주도해 어떤 기업보다 빠르게 최신 통신 기술을 상용화하고 있으며, 스마트폰 완성품 제조업체들이 해당 기술을 쉽게 탑재할 수 있도록 AP와 모뎀칩을 원칩화해 내놓고 있다.
퀄컴이 빠르기는 하지만, 인텔도 모뎀칩을 내놓고 있다. 대만 미디어텍도 있다. 만약 퀄컴이 진정 ‘약탈적 가격’을 설정했다면 설계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인텔 칩을 선택하는 제조업체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모두가 퀄컴 칩을 사용한다. 제조업체는 성능, 가격, 설계 편의성을 면밀하게 비교해본 뒤 퀄컴 칩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약탈적 가격을 설정했다면 그들이 퀄컴 칩을 계속 쓸 수 있었을까. 약탈적 가격이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퀄컴의 독점적 지위는 자유로운 경쟁 체제에서 혁신 기술을 개발하려는 그들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 퀄컴 본사에 자리잡은 ‘특허의 벽’이 그에 대한 증거다. 중국 정부가 퀄컴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특허 수수료를 낮췄다고 한들 스마트폰 완성품 가격은 전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한국 언론은 중국 과징금 발표가 나온 직후 반(反) 퀄컴 정서를 부추기는 기사와 사설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조치에 맞춰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국내 기업으로부터 받아가는 특허 수수료를 낮출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혁신 기술을 개발해 상황을 뒤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중국 정부처럼 깡패 짓거리나 하자는 이런 견해들은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경쟁으로 생성된 독점을 옹호한다. 그 독점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부의 힘이 아닌 경쟁사들의 혁신 노력이다. 삼성전자가 계속적으로 정부에 매달려 ‘퀄컴에 강력한 꿀밤을 한 대 먹여달라’고 애원해왔다면, 갤럭시S6에 퀄컴 칩을 배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삼성전자는 최근 독자 모뎀칩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은 퀄컴에 내는 특허료를 ‘퀄컴세(稅)’라고 불렀다. 이런 정신상태로 무슨 혁신을 할 수 있을까. 퀄컴이 돈을 버는 것을 두고 ‘글로벌 갑질’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정당하게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세계 산업계를 이끄는 것이 갑질이라면 우리 기업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퀄컴은 중국 정부로부터 1조원의 과징금을 받은 그날, 본사에서 각국의 기자들에게 LTE-U(Unlicensed)에 관한 기술 비전을 면밀하게 소개했다. 정부로부터 허가받지 않아도 되는 무선랜 주파수를 LTE와 결합하면, 보다 경제적이면서도 더 빠르게 통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LTE-U의 개념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퀄컴의 지위는 한층 더 공고해질 것이다. 한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려면 이러한 혁신 노력이 있어야 한다. 깡패 짓거리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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