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기본분류

[취재수첩] 떠나거나, 붙잡게 만들거나

[전자부품 전문 미디어 인사이트세미콘]

이서규 픽셀플러스 대표는 최근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용 CMOS이미지센서(CIS) 시장에는 절대 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과거의 뼈아픈 상황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000년 4월 설립된 픽셀플러스는 휴대폰용 CIS를 주력으로 생산하며 덩치를 키웠다. 당시 픽셀플러스의 CIS는 삼성전자 애니콜 휴대폰에 탑재됐다. 삼성이 최대 고객사였던 셈이다. 이를 발판으로 2005년 12월 미국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자체 CIS 사업을 확대하면서 주문량이 줄자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상장 3년여 만인 2008년 139억원의 대규모 손실을 냈고, 2009년 5월에는 결국 나스닥에서 퇴출됐다. 당시 기사 제목에 ‘퇴출’이 많이 붙어서인지 픽셀플러스의 파운드리 서비스를 맡았던 동부하이텍의 설립 멤버 중 일부는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픽셀플러스가 그 때 망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이런 사람 중 한 명은 픽셀플러스의 스토리를 듣곤 이 대표를 향해 ‘지옥에서 걸어나온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 대표는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국내 대기업에만 몸이 매여 있으면 절대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틈새 시장을 찾고 그 속에서 경쟁력을 갖춘 뒤 해외로 나가야만 살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픽셀플러스는 2009년 당시 대세였던 전하결합소자(Charge Coupled Device, CCD)를 대체할 CMOS 방식 이미지 센서를 개발해 보안 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었다. 보안 카메라 센서 시장의 맹주는 소니였다. 보안 카메라 업체들은 소니의 CCD를 비싸게 사와 이미지신호처리(ISP) 프로세서를 함께 붙여서 완성품을 만들었다.

픽셀플러스는 CIS에 ISP를 통합한 제품을 내놓고 경쟁 구도를 뒤집었다. ISP가 통합된 픽셀플러스의 CIS는 소니 CCD 대비 가격이 저렴했던 데다 성능 차이도 크지 않았다. 지난해 보안 카메라 CIS 시장에서 픽셀플러스의 점유율은 32.5%로 1위였다. 이 과정에서 고객군이 다변화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해당 업계에 픽셀플러스의 제품을 쓰지 않는 업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운아나텍도 제품 경쟁력 하나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코스닥에 입성하는 팹리스 반도체 업체다. 2006년 7월 설립된 동운아나텍의 주력 제품은 모바일 기기의 카메라 모듈에 탑재되는 AF 드라이버IC. 연간 매출액의 85%가 이 제품에서 나온다.

AF는 여러 렌즈를 이동시켜 초점이 맞는 위치를 자동으로 찾는 원리로 구현된다. 렌즈가 정확한 위치로 이동하려면 VCM(voice coil motor) 등의 모터에 적절한 전류를 흘려줘야 한다. AF 드라이버IC는 이러한 전류 흐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동운아나텍은 모바일 카메라 모듈용 AF 드라이버IC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시장조사업체 테크노시스템즈리서치(TSR)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AF 드라이버IC 시장에서 점유율 36%을 기록, 일본의 로옴(ROHM, 30%), 미국 아나로그디바이스(7%) 등 경쟁사를 누르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운아나텍이 이 정도 점유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기술 경쟁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동운아나텍의 드라이버IC는 ADI나 로옴의 제품과 비교해 더 적은 전력으로 더 빠르게 렌즈를 이동시킬 수 있다. 안쓸래야 안 쓸수가 없는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물론, LG전자, 중국 업체들의 스마트폰에는 동운아나텍의 IC가 탑재된다. 애플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는 샤프도 동운아나텍의 주요 고객사 명단에 올라 있으니 지금은 모르겠지만 아이폰에도 동운아나텍 제품이 들어갔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두 업체가 얼마만큼 뻗어나갈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 그들의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자의건 타의건 일부 대기업에 종속돼 경쟁력 확보 노력을 게을리하면 경영의 지속 가능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종속돼 있다 망하면 그건 또 누굴 탓할건가? 그 전에, 망할 기업은 망하게 놔둬야 한다. 그래야 자발적 인수합병(M&A)도 일어난다. 시스템반도체 업계가 정부 보조금이 줄었다고 울상을 짓는다는 뉴스 기사도 그만 쓰시라. 이미 할 만큼 했다. 정부가 R&D 자금 등으로 망할 회사를 살려주면 멀쩡한 기업이 유탄(덤핑 등에 따른)을 맞는다.

중소기업은 공룡을 쓰러뜨리진 못하지만, 공룡이 밟을 때를 대비해 따끔거릴 수 있는 뾰족한 바늘(경쟁력)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바늘은 공룡과의 공생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meicon.com

디지털데일리 네이버 메인추가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