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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메모리 산업 진입, 4가지 시나리오

* 7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전자부품 전문 미디어 인사이트세미콘]

중국 국영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이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를 제안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가 나오면서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으나, 현지 신문과 중화권 반도체 조사업체들은 이미 올해 초부터 관련된 움직임을 꾸준히 알려왔었다. 중앙정부의 눈먼 돈을 받아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는 중국 지방정부의 경쟁은 굉장히 치열하다. 칭화유니그룹의 마이크론 인수 제안도 이러한 유치 경쟁의 한 사례로 보는 시각이 있다.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emicon.com

대만 메모리 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의 조사 리포트에 따르면, 베이징, 상하이, 허페이, 우한 등 중국 주요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을 받아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치열한 유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눈먼 돈을 타 내기 위한 지역간 싸움’인 셈이다.

베이징은 중국 반도체 설계 거점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해외파’ 인재들이 많다. 베이징에는 칭화유니그룹을 보유한 국립 칭화대학과 중국과학아카데미의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연구소(IMECAS) 등이 있어 중국 내 반도체와 관련된 전문 지식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베이징에 거점을 두고 있는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에 인수를 제안한 것도 각 지방정부끼리 펼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공장 유치 경쟁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상하이 지방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상하이 지역 자본과 기업들은 최근 들어 D램 설계 업체들을 연이어 사들이고 있다. 지난 3월 상하이 지역 펀드인 서밋뷰 캐피탈은 미국 특수 D램 설계 업체인 ISSI를 6억4000만달러에 인수했다. 4월에는 상하이에 본사를 둔 동심반도체유한공사가 한국의 D램 설계 업체인 피델릭스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의 본사도 상하이에 있다.

허페이는 일본 엘피다의 대표이사 사장이었던 유키오 사카모토를 영입해 반도체 설계 관련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허페이는 최근 대만 파워칩과 함께 현지에 300mm 반도체 생산 공장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파워칩은 최근 D램 생산을 포기하고 파운드리 업체로 전향한 바 있다. 허페이에 세워질 파워칩 공장에선 BOE의 디스플레이구동드라이버IC 등이 생산될 예정이지만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면 메모리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우한도 대상 지역 가운데 하나다. 우한에는 파운드리 업체인 XMC가 있다. XMC는 최근 미국 반도체 업체 스펜션과 공동으로 3D 낸드플래시를 개발하기로 했다. 트랜드포스는 우한이 가장 유력한 도시라며 “중국의 첫 번째 국영 D램 산업은 우한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해당 업체의 대표직은 현 SMIC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짜오하이쥔(Haijun Zhao, 海)이 맡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2006년 XMC가 우한에 설립될 당시, 우한시 정부는 SMIC에 대리 경영을 의뢰한 바 있다. 짜오하이쥔 COO는 SMIC 입사 전 대만 프로모스테크놀러지에서 상품본부장 및 중화사업본부 부사장직을 겸했던 인물로 전 직장인 프로모스 측과 함께 렉스칩, 이노테라, 난야에 근무하고 있는 D램 전문가들을 스카웃하기 위해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메모리 산업 진입, 4가지 시나리오

어떤 지역이 됐건,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입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들어올 것인가. 4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 번째는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을 인수하는 것이다. 마이크론의 기술력(미세공정 전환)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비교하면 한 세대 가량 뒤쳐진 상태이긴 하나 중국이 자금을 퍼붓는다면 또 다시 치킨게임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업체들 입장에선 가장 나쁜 시나리오다. 물론 마이크론 인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보보안 등을 이유로 미국 정부가 이를 승인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치킨게임에서 패배한 대만의 메모리 업체들을 인수하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 업체들이 인수할 수 있는 업체는 윈본드 정도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노테라와 렉스칩은 사실상 마이크론의 지배를 받고 있다. 난야 역시 마이크론의 기술을 이전받아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추후 특허 소송 등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파워칩도 예외가 아니다. 파워칩은 기존 엘피다의 기술을 들여와 D램을 생산해왔다. 엘피다는 마이크론이 인수를 완료한 상태이므로 ‘걸면 걸린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기존 중국 자본이 인수한 ISSI, 피델릭스 등 메모리 팹리스를 통합하고 XMC 혹은 SMIC와 같은 현지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기는 것이다. 이 경우 첫 번째, 두 번째 방식 대비 시장 안착 속도가 느릴 것으로 업계에선 예상하고 있다.

네 번째 시나리오는 유키오 사카모토 전 엘피다 사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메모리 반도체 업체를 세우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흩어진 일본의 메모리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앞서 제시된 다른 시나리오와 비교하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왜 우려하나

업계 전문가들은 ‘마이크론 인수’ 카드가 먹히지 않는 한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당분간 큰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디스플레이, 발광다이오드(LED), 태양광 분야와는 달리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초기 투자비용이 상당한데다 기술 장벽 또한 높아 단기간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쫓아오기란 역부족이란 설명이다. 이명영 SK하이닉스 재무본부장(전무)은 “중국이 메모리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얼마나 빨리, 어떤 수준의 기술을 갖고 들어올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경쟁 우위를 점하는 것은 기술 개발을 통한 원가경쟁력 확보”이라며 “그런 것들이 월등하다면 점유율에서 지속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업체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 때문이다. ‘묻지마 투자’는 이미 다른 산업 분야에서 그 위력을 실감한 바 있다. 더욱이 D램은 15나노가 원가절감의 마지노선이라는 견해가 많다. 15나노에서 더 이상 원가절감을 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후발 주자에게 추격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경험했듯 인재 유출 역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메모리 산업에 뛰어들면 한국 내 메모리 관련 인력을 적극적으로 스카웃할 것”이라며 “디스플레이 분야의 사례를 봤을 때 국내 전문가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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