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발표된 신형 맥북은 애플이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몇 가지 신기술이 접목됐다. 나비식 메커니즘을 적용한 키보드, 압력을 감지하는(포스터치) 터치패드, USB-C가 대표적이다. 내부적으로는 인텔 ‘코어M’ 중앙처리장치(CPU)를 장착한 애플의 첫 번째 노트북이라는 것과 두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계단식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눈길을 끈다. 이 모든 요소는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PC)를 바라보는 고유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글 이수환 기자 shulee@insightsemicon.com
‘아이북‧파워북→맥북·맥북에어·맥북프로’로 진화한 애플의 노트북의 라인업은 고(故) 스티브 잡스가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후부터 급격한 변화를 겪은바 있다. 가장 큰 사건은 아키텍처를 완전히 뒤바꾼, 그러니까 CPU를 파워PC에서 인텔 x86 계열로 교체한 일이다. 그럼에도 CPU와 같은 특정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메모리, 스토리지, 입출력(I/O)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밸런스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SCSI, IEEE1394를 오랫동안 고수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핵심은 CPU 부담을 낮추고 각 하드웨어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선보인 신형 맥북은 실험적인 성격이 짙게 엿보인다. 기본적인 골자는 앞서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향후 노트북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아이패드 에어2’에서도 그랬지만 맥북은 노트북으로써 줄일 수 있는 두께의 한계(13.1mm)에 다다랐다. 더 이상 두께가 얇아지면 3.5파이 이어폰 단자까지 연결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물론 맥북보다 더 얇은 노트북(레노버 요가3 프로, 삼성전자 노트북9 등)이 존재하고 이들 제품에 USB 단자까지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이후 맥북은 더 얇은 두께로 디자인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물리적인 벽은 넘을 수 없다. 배터리 밀도를 끌어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사용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메인보드의 크기를 줄일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 힌트가 있다.
애플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도 수차례 언급했지만 배터리를 많이 넣으면 사용시간이 길어지는 대신에 무게와 두께가 불리해진다. 반대로 휴대성이 높아지면 배터리가 부족해져 사용시간에 손해를 본다. 이런 두 가지 상충되는 가치를 두고 얼마나 타협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이번에는 메인보드가 목표가 된 셈이다. 기존 맥북 라인업에서 가장 작은 메인보드는 11인치 맥북에어에 쓰였다. 이번 맥북에 장착된 메인보드는 지금까지 애플이 설계한 메인보드에 비해 2/3 가량이 줄었다. 얼마나 줄었느냐면 아이패드의 그것과 흡사한 수준이다. 심지어 모양새도 닮았다. 코어M이 아니라 애플이 자체적으로 설계한 A 시리즈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쓰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미리 언급했지만 애플은 이미 CPU 아키텍처를 갈아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애플 최고 성능의 AP는 ‘A8X’로 20나노 공정에 8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코어를 품고 있는데, 올해 출시될 새로운 아이패드에는 ‘A9X’이 쓰일 것이고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이제까지 선보인 AP 성능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인텔 베이트레일 이상으로 점쳐진다. 맥북에 사용한 코어M보다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애플에게 있어 강력한 무기가 생긴 것이고 인텔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노트북 가운데 1000달러가 넘는 제품은 애플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고 조사된바 있다. 지난 1분기 맥PC 판매량은 456만대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 이 시장 5위인 에이서의 PC 출하량이 518만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량이다. 현 시점에서 애플이 갑자기 CPU를 바꾸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적당한 대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텔의 가슴은 타들어갈 터다.
맥북에서 또 다른 매력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서 찾을 수 있다. 2012년 4억달러를 주고 인수한 아노비트테크롤로지의 SSD 컨트롤러 기술이 듬뿍 담겼다. SSD의 성능이 낸드 플래시와 함께 어떤 컨트롤러를 사용하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성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PA세미도 같은 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 2008년 애플이 흡수한 이 업체는 애플이 자체적으로 AP를 설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애플은 삼성전자의 AP를 그대로 이용했으나 이후부터는 반도체 설계자산(IP) 재설계를 통해 아이폰과 태블릿에 적용했으며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 따지고 보면 애플이 과감하게 노트북 CPU를 바꾼다면 PA세미의 공이 가장 크다고 봐야 한다.
전원과 USB 단자를 하나로 통합한 ‘USB 타입 C’는 사용자 경험(UX)으로 풀어봐야 한다. 맥북이 출시되면서 바뀐 것 가운데 하나가 본체 뒷면의 애플 로고 조명이다. 전원을 켜면 들어오는 이 조명은 애플 노트북 사용자의 자부심(?)이기도 했으나 음각 형태로 바뀌었다. 흥미로운 점은 USB C 케이블을 연결했을 때 들리는 효과음이 아이폰, 아이패드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단순하게는 동일한 UX를 제공하겠다는 의도겠지만 본질적으로 스마트폰, 태블릿, PC를 하나로 묶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아이폰, 아이패드에 적용된 ‘라이트닝’ 단자가 USB 3.0과 같은 고속 데이터 전송을 지원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USB C의 데이터 전송속도는 USB 3.0의 두 배인 10Gbps에 이른다. 앞서 적용한 ‘썬더볼트’와 같은 성능이면서 더 얇고 기존 USB와의 하위호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애플의 USB C 채용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썬더볼트도 인텔이 개발에 참여했다.
맥북에서 애플이 접목한 부품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PCB 기판(컴펙매뉴팩처링), LPDDR3 메모리(SK하이닉스)도 같은 업체, 엇비슷한 사양이 쓰였다. 여기서 CPU가 인텔에서 애플로 바뀐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애플에게 x86은 더 이상 매력적인 아키텍처가 아니며 시간이 흐를수록 바라보는 눈길이 까칠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애플이 인텔을 대체할 방법을 톺아보고 있다.
<이수환 기자>shulee@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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