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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대한민국은 진공청소기 실험장?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지난 2~3년 사이 국내 진공청소기 시장은 양적, 질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전반적인 내수부진에도 불구하고 전체 시장규모가 연간 5000억원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 프리미엄(일반적으로 50만원이 넘어갈 경우) 제품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시장이 뜨거워지니 경쟁도 달아올랐다. 이 기간 동안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토종 업체뿐 아니라 다이슨, 일렉트로룩스, 밀레 등 외국계 업체의 신제품 출시가 이어졌다. 여기에 신규로 경쟁에 뛰어드는 곳이 많아지면서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했다. 닐피스크, 후버를 비롯해 얼마전 국내 진출을 선언한 비쎌에 이르기까지 예전에 보기 어려웠던 업체까지 찾아볼 수 있게 됐다.

흥미로운 부분은 국내에서 지사를 세우지 않고 단순 유통 업체를 통해 제품을 판매 경우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외가 있다면 다이슨(코스모글로벌) 정도다. 나머지 브랜드는 아직까지 존재감이 미미하다. 왜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유통망 확보의 어려움과 함께 전략부재를 꼽을 수 있다. 국내 시장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LG전자는 각각 월 평균 80~120억원(시장조사업체 GfK 기준) 가량의 진공청소기 매출을 올린다. 나머지 30%(월 100억원 추정) 내외의 시장을 두고 다이슨, 일렉트로룩스, 밀레, 필립스, 지멘스가 경쟁하는 구도다. 이런 틈바구니를 신규 업체가 파고들기가 무척 어렵다.

유통망은 홈쇼핑과 함께 온·오프라인의 균형이 잘 맞춰져야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앞서 언급한 외국계 업체는 진공청소기만 단일로 판매하지 않는다. 밀레는 냉장고, 세탁기에 전기레인지를 구비하고 있고 지멘스도 가게나우라는 초고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일렉트로룩스도 마찬가지고 다이슨조차 냉온 선풍기를 판다.

하지만 진공청소기, 혹은 청소라는 카테고리에서 다양한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닐피스크나 카처를 제외하고 후버나 비쎌의 경우 무척 열악한 조건을 견뎌내야 한다. 소위 홈쇼핑에서 ‘대박’이 터지지 않으면 온라인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마진이 무척 박하다. 1000원에 일희일비하는 시장에서 버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브랜드에 대한 탄탄한 지지층이 존재해야 하는데 전통과 가격, 혹은 틈새만 노리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으로 사업을 지속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후버와 비쎌 모두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이것만 가지고는 국내에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다이슨이 역사가 길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국내 시장을 너무 만만하게 바라본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국내에서 외국계 업체의 제품이 프리미엄을 얹어 짭짤한 재미를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업체의 제품은 국내가 해외보다 가격이 더 비싸고 그 이유를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이 수많은 진공청소기 실험장이 됐고 그만큼 시장이 커졌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대주의 소비문화는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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