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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장사와 삼성전자의 공급망관리 그리고 애플
디지털데일리
발행일 2011-05-18 16:25:44
[IT 전문 블로그 미디어=딜라이트닷넷]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삼성 김밥집은 전국 각지에 흩어진 수백 군데의 포장마차에 도매로 김밥을 공급한다. 이 집의 도매 김밥은 적당한 가격에 맛이 괜찮고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배달됐기 때문에 포장마차 주인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었다.
삼성 김밥집은 날이 갈수록 번창해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김밥 도매 집을 지역별로 거느리게 됐다. 삼성 김밥집이 이처럼 번창할 수 있었던 건 이 집의 오너 사장인 이 아무개씨의 카리스마와 매니저인 윤, 최 아무개씨의 똑똑함이 밑바탕이 됐다.
삼성 김밥집이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하루에 김밥이 몇 개나 팔릴 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사업 개시 첫날 100개의 김밥을 말아놨지만 팔려나간 건 고작 10개에 불과했다. 김밥을 만드는 아주머니들은 “남은 김밥을 랩에 잘 싸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내일 팔자”고 제안했지만 전임 매니저인 윤 아무개씨는 “상할 수 있고, 그러면 신뢰가 땅에 떨어진다”며 남은 김밥 90개를 쓰레기통에 밀어 넣었다.
아주머니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힘들게 말아놓은 김밥을 왜 버리느냐고 한 아주머니가 윤 매니저의 멱살을 잡고 대들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오너 사장인 이 아무개씨는 대든 아주머니를 가차 없이 잘라버렸다. 그랬더니 이후부터 윤 매니저에게 대드는 사람은 없었다. 시키면 시킨 대로 말도 잘 듣게 됐다.
삼성 김밥집은 다음날 10개의 김밥을 말아 놨다. 그런데 주문이 몰렸다. 알고 보니 이 날 야구 경기가 있었다. 윤 매니저는 김밥을 더 말라고 지시했지만 단무지가 모자랐다. 단무지를 대 주는 협성상회에 급히 연락을 취했지만 다른 도매 김밥집이 모두 휩쓸고 간 뒤였다. 윤 매니저는 어제 남은 김밥을 버리면서 손해를 봤고, 오늘 더 팔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편으로는 정확한 수요 예측과 재료를 대 주는 상인들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윤 매니저는 이날 이후로 포장마차 주인들과 매일 전화 통화를 했다. 이들에게 매일 김밥이 몇 개나 팔리는 지 들으니 얼추 예측이 가능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바쁘다며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삼성 김밥집은 어디까지나 을의 입장이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김밥 가격을 개당 50원씩 깎아주고 판매 정보를 얻었다.
수요 예측이 어느 정도 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김밥이 남거나 없어서 팔지 못하는 경우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딱 맞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재료 상인들은 삼성 김밥집이 비교적 정확한 수요 예측 능력을 기반으로 하루 전날 단무지와 오이 등을 주문하니 농가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데 수월함을 느꼈다. 일부 상인은 삼성 김밥집에만 재료를 공급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최 아무개 매니저는 전임인 윤 아무개 매니저가 깔아놓은 김밥 장사의 공급망관리(SCM) 기반을 더욱 확고하게 닦았다. 삼성 김밥집은 전날 새벽 1시부터 오전 5시까지 김밥을 말고 전국 각지로 운송했는데, 포장마차 외 분식집에서도 김밥 공급 요청이 들어오자 24시간 김밥을 만드는 체제로 사업 운영 방법을 변경했다. 김밥 종류도 김치김밥, 참치김밥, 소고기 김밥 등 매우 다양해졌다. 삼성 김밥의 맛을 알리는 마케팅 활동도 이 때부터 시작됐다. 물론 사업의 복잡성은 더욱 커졌다.
삼성 김밥집은 김밥 종류별로 책임자를 두게 됐다. 각 책임자 밑에는 김밥을 판매하고(영업), 광고하고(마케팅), 만들고(생산), 재료를 사 오고(구매), 전국 각지로 운송하는 사원들이 배치됐다.
최 아무개 매니저의 지시로 각 책임자 이하 사원들은 매 시간 50분마다 판매생산계획(S&OP Sales & Operation Planning) 회의를 열었다. 과거에는 이 같은 회의를 하루 한 번 했지만 이제는 매 시간 회의가 열린다. 포장마차와 접촉하는 판매 사원이 시간대별 김밥 판매량을 고려해 수요를 말하면 다른 사원들이 재료를 주문하고 김밥을 만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밥은 전국으로 운송된다.
수요 예측력은 더 정확해졌다. 주요 거점에 위치한 포장마차와 분식집이 분 단위의 김밥 판매량을 삼성 김밥집에 보내줬기 때문이다. 삼성 김밥집은 이들에게 500원인 김밥 가격에서 100원이나 깎아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최 매니저의 PC에는 매 시간 전국 각지의 김밥 판매량이 그래프로 뜨도록 되어 있다. 최 매니저는 그러나 매 시간 회의에서 확립된 김밥 만들기 개수는 변경할 수 없도록 했다. 정확한 수요에 맞춰 계획대로 생산하고 판매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함이었다.
최 매니저는 매 시간 판매 생산계획을 세울 때 1시간 전 회의에서 도출된 계획이 제대로 지켜졌는 지 꼭 확인했다. 재료는 제대로 사왔는지, 김밥은 제대로 말았는지, 운송 시간은 정확히 지켜졌는 지 점검했다. 계획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원인을 파악한 뒤 이를 해결해나갔다. 얼마 전 계획보다 두 배로 더 팔고 온 영업사원을 크게 꾸짖은 삼성 김밥집의 사례는 김밥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대 경쟁자인 LG 김밥집도 삼성의 이러한 SCM 능력을 벤치마킹하고 배우기로 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간 권 아무개 총무 책임자가 이를 적극 독려했다. 그러나 쉽지가 않았다. 판매 생산 회의를 할 때면 재료를 늦게 가져왔네, 김밥 수요를 잘못 예측했네, 시간 내 제대로 만들지 못했네 등 서로 잘못을 미루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밥 판매자가 10개를 만들어달라고 했지만 김밥 마는 이는 시간 내 8개 밖에 못만들었다. 그랬더니 다음번에는 수요가 10개인데도 12개를 만들어달라고 했고, 이번에는 12개를 제 시간에 만들어주자 남은 2개를 팔지 못하는 식이었다.
LG 김밥집은 삼성 김밥집이 도입한 PC와 전화기 등 다양한 장비를 구입하느라 돈을 많이 썼지만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버린 것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삼성 김밥집의 한 사원은 “SCM의 성공은 기업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사원들의 기를 찍어누를 수 있는 사장의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LG 김밥집은 오너 사장이 와서 SCM 분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 이 무렵 도매 깁밥집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삼성 김밥집은 경쟁으로 걱정도 됐지만 한편으론 웃었다. 김밥의 필수 재료인 김과 밥을 이들 도매 김밥집에 공급하는 것 또한 삼성 김밥집의 주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오너 사장이 거금을 들여 마련한 최고급 압력 밥솥 수십대와 해남 앞바다의 김 수확지를 선점해놓은 것이 주효했다.
애플 김밥집이 혜성같이 나타난 것도 이 때 쯤이다. 애플 김밥집은 얼마 전 누드김밥을 처음으로 개발해 포장마차 주인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입에서 살살 녹는 누드김밥을 찾는 이들은 지속적으로 늘어만 갔다. 급기야 애플 김밥집은 혁신적인 삼각김밥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삼각김밥의 독특한 모양새는 둘째치더라도 맛이 너무 좋아 금새 입소문을 탔다. 가격도 400원으로 경쟁 김밥 대비 20% 저렴하다. 삼각김밥 예찬론자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애플 김밥집은 삼성으로부터 김과 밥을 사가는 큰손이 됐고 삼성 김밥집은 사각 김밥을 만들어 대응했지만 위기감이 높다
AMR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SCM 평가 순위는 삼성이 7위다. 애플은 1위. 삼성 김밥집이 관리의 혁신으로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순위에 들었다면, 애플은 상품의 혁신으로 SCM 평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도매 김밥집은 애플 김밥집이 가격을 후려친다며 비난하고 있지만 SCM 측면에서 애플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분명한 경쟁력이다. 결국은 관리보다 김밥의 맛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애플 김밥집의 맛에 삼성의 관리가 덧붙여지면 어떨까. 삼성 김밥집의 행보가 주목된다.
[한주엽기자 블로그=Consumer&Prosu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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