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2회 변론에 출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조기대선 일정이 확정된 가운데, 차기 정권에서 ICT(정보통신기술) 조직의 개편이 예상된다. 특히 새 정부에선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조직개편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이 추천한 상임위원 2명이 방통위 내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합의제 기구라는 취지가 무색해진 가운데, 차기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정권을 견제할 수 없는 현재의 구조적 한계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방통위 개편 방향에 이목이 쏠린다.
◆ 갈등의 중심엔 '대통령 직속 합의제 구조'…출범부터 정치적 외풍 우려
방통위는 지난 2023년 8월부터 위원장을 포함한 여권 인사 2인이 단독 의결하는 식으로 운영돼 왔다. 5인 완전체지만, 야당 측 상임위원 2인의 임기가 차례대로 만료되면서다.
이 가운데 야당은 여권 인사 2인 단독 의결의 정당성을 문제 삼아 왔다. 방통위는 야당 몫 상임위원이 임명될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공영방송 이사 교체 및 민영화 등 중차대한 문제들에 대해 야권 추천 상임위원이 없는 상태에서 의결한 것은 헌정상 처음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방통위가 처한 상황이 ‘대통령 직속’ 합의제 기구라는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 설치법) 제5조 2항에 따르면 상임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여당 교섭단체 1인·야당 교섭단체 2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대통령 직속 기관인데다 정부·여권 인사가 전체 상임위원 5명 중 3명을 가져가다보니 여당의 일방통행이 언제든 가능한 구조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러한 상황은 방통위 출범 당시부터 예고됐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데다 정부·여권 인사가 전체 상임위원의 과반으로, 합의제 기구라는 운영 원칙을 살리지 못하고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 논리에 좌우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 방통위의 전신인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와 같은 수준의 위상을 가지면서도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도 보장하려다보니 오늘날의 형태를 띄게 됐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지금의 방통위는 처음 구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다. 방통위를 처음 구상한 건 1990년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송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면 방통위의 위상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던 만큼 당시엔 오히려 ‘행정부와 독립된 형태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에 행정부로부터 분리된 독립위원회 형태인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모델로 제시됐다.
하지만 국내 첫 통방융합기구인 방통위가 전신인 방송위와 같은 위상을 가져가야 한다는 이유로 미국 FCC 모델을 기본으로 한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 형태가 이후 지지를 받으면서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위원회’라는 모순적인 구조가 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유례없는 일방통행, 구조적 한계 두드러져…"여야 타협 노력도"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적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등 방송장악 관련' 청문회에 참석한 방송통신위원회 김태규 부위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 가운데 윤석열 정권에서 이러한 방통위의 구조적 한계가 유독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법상 위원회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가 참석하면 의결할 수 있지만, 방통위가 2인 체제로 운영된 것이 처음이 아님에도 이 같은 일방통행은 전례가 없었다고 국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야당 관계자는 “공영방송의 이사를 해임할 때는 이사회가 먼저 해임안을 의결한 뒤 방통위에 제안하거나, 감사원의 조사결과 죄가 밝혀졌을 때 그것을 근거로 해임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방통위에서 임의로 이사 해임안을 상정해 의결하는 것은 전례도 없을 뿐더러 이는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정계와 학계에선 방통위가 이제라도 합의제 기구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방통위의 구조적 한계가 수면 위로 드러난 이상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방통위의 정상 운영은 불가하다는 판단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방통위의 최소 의사정족수를 현행 상임위원 2인에서 3인으로 늘리는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방통위가 합의제 기구로서 역할을 하려면 최소 의사정족수가 3인은 되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다만, 일각에선 방통위의 실패를 제도의 문제로만 돌리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방통위를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정부와 상임위원들의 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임위원 출신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문제는 제도 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진정한 정치가 실종되다보니 제도 탓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정치권에 있으며, 대화를 통해 여야가 서로 타협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방향은…"정권 교체시 대대적 개편 불가피"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을 수행 중이었던 이상인 부위원장이 사퇴한 2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의 모습. [ⓒ 연합뉴스]
단편적인 조직개편 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합의제라는 구조와 별개로 ‘방송=언론’이라는 공식 탓에 정책 논의는 정치적 공방에 매몰되고, ICT 산업정책은 늘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다.
실제 방통위 출범이후 통신·방송 시장에서 성과를 찾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언이다.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은 시행 이후 매해 폐지 존폐의 기로에 섰으며, 2019년부터 이야기된 미디어통합법제 마련은 아직이다. 방송법·IPTV(인터넷TV)법·전기통신사업법 등 부처별 산재된 미디어 법제를 하나의 법제로 통합해 낡은 방송법 규제체계를 전면 개편한다는 취지다.
더욱이, 미디어 산업을 방통위를 포함한 3개 부처가 동시에 관할하면서 일관된 정책 방향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현재 국내 미디어 정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방통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등 3개 부처로 산재돼 있다. 방통위는 지상파와 종편, 과기부는 유료방송으로 영역을 나눠 관장하고 있고, 문체부는 주로 외주 제작이나 독립 제작 등 콘텐츠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전문가는 “2018년 방통위는 과기정통부가 재허가하기로 한 CCS충북방송에 대해 부동의를 의결한 바 있다”라며 “재허가라는 하나의 행위에 대해서 두 부처가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는 등 특정 서비스에 대해 부처 간 이견이 존재하는 경우 법안의 개정이나 정책의 집행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2022년 당시 여야의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안을 살펴보면, 결국 큰 흐름에선 공영방송을 별도의 합의제 기구의 형태로 분리하고 과기정통부와 문체부로 분리된 방송미디어 정책 기능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현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로, 효율적인 정책과 규제가 가능한 정부 부처 형식을 논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개편 방향으로는 다양한 안이 제시된다. 이미 여야는 당 차원에서 국회 관계자와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특위를 꾸리고 방통위를 포함한 ICT 개편 방향을 논의 중이다.
최근 서울대학교 공익산업법센터 주최로 진행된 ‘AI 중심 시대의 합리적인 방송통신규제 거버너스’ 세미나에서 법무법인 세종의 이종관 박사는 미디어를 포함한 ICT 거버넌스의 조직 개편 방향으로 ▲영역별 2원 구조(공영 미디어-시장 상업 미디어) ▲기능별 2원 구조(규제-진흥) ▲미디어콘텐츠 단독 부처와 공영방송 위원회의 2원 구조 등 3가지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종관 박사는 “영역별 2원 구조의 장점은 ICT·통신·방송미디어를 모두 통합해 DX·AX 시대의 도래에 따른 정책적 대응이 용이하고 정책의 실효성과 효율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다만, 국내 공영방송 체제의 특수성상 공적 영역과 시장 영역의 명확한 구분이 어려워 거버넌스 체계 역시 모호해질 수 있다”고 짚었다.
기능별 2원 구조에 대해선 “통신 사후규제도 같이 가져간다는 점에서 현재의 거버넌스와 차이점을 가진다”라며 “하지만, 방송과 ICT를 분리시켰을 때 DX·AX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냐는 과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콘텐츠 단독 부처와 공영방송 위원회의 2원 구조에 대해선 “정통부 방송위 구조로, 기존 논의와 맥락은 같이 하지만, 부처에 관할 영역이 굉장히 적어진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디어 정책 컨트롤타워 설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현재 방송과 관련된 정책이나 인사는 대통령실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효과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라며 “K-콘텐츠가 가진 무형적 가치나 파급효과까지도 고려한다면, K 콘텐츠를 ‘전략 사업’ 혹은 ‘미래 혁신 사업’으로 하나로 묶어 컨트롤 타워를 수립해 운영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제언했다
이 밖에도 업계에선 미디어콘텐츠 단독 부처와 공공방송영상위원회(가칭) 2원 구조가 제안됐다. 과기정통부와 문체부, 방통위에서 미디어콘텐츠 부분을 떼어 새로운 미디어콘텐츠 단독 부처를 설립하는 한편, 방통위를 ‘공공방송영상위원회’으로 개편하는 것이 골자다. 앞서 언급된 ‘공영방송 위원회’와는 단순 공영방송 뿐만이 아닌, 모든 방송사업자의 공적책무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경우 대대적인 조직개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명분삼아 위원장 혹은 장관을 새롭게 임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방통위의 경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위원장의 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에서 선임된 이진숙 위원장을 갈등 없이 내몰기 위함이다. 당연 현재까지의 야당의 상임위원 추천 절차도 중단될 전망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방통위는 문재인 정부 인사인 한상혁 전 위원장을 비롯해 내부 직원들을 향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며 어수선해졌고, 끝내 한 전 위원장의 면직 처분으로 석달 가까이 위원장 공백을 겪은 바 있다.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정부 조직개편이) 쉬운 것은 아니다”라며 “특히, 방통위의 경우 정치와 직결되는 여론 형성기능을 보유한 공영방송의 소관부처이다 보니, 어느 정권 에서나 (방통위를 통해) 특정 당에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위성 측면에서도 (방통위 개편을) 10여년 넘게 미뤄온 가운데, 미디어 환경은 크게 바뀌었고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라며 “방통위를 개편해야 한다는 국민의 인식도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은 만큼 이제는 (개편을) 해야할 때가 왔다고 판단된다”고 제언했다.
Copyright ⓒ 디지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K브로드밴드, K리그2 생중계로 지역밀착형 미디어 역할 강화
2025-04-18 09:16:40“6G 상용화 이전 'AI 네트워크 구현' 위한 지원 필요”
2025-04-17 20:30:56티캐스트, 콘텐츠 자체제작 중단…“제작팀 해체 등 비상경영체제 돌입”
2025-04-17 18:04:05[IT클로즈업]‘미키17’로 재점화된 영화계 홀드백 문제...레거시의 단순 몽니일까?
2025-04-17 15:04:48네이버-컬리, 이커머스 분야서 전방위 협업…“시너지 확대 기대”
2025-04-18 11:11:27무신사 뷰티, '주술회전' 소환…주미소 컬래버 마스크 출시
2025-04-18 09:16:57"공개일 유출 의혹에 미정이라더니"…디즈니+, '나인퍼즐' 5월21일 공개
2025-04-17 18:06:10무신사, 창립 첫 비상경영 돌입…"1분기 실적 내부 목표 미달"
2025-04-17 17:21:46민주당 게임특위, “등급분류 전면 개편·질병코드 대응 강화”
2025-04-17 17:20:29[DD퇴근길] '지브리' 프사로 도배될까…오픈AI, 차세대 SNS 개발 착수
2025-04-17 17: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