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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방통·공정위 규제충돌 논란, 그 자체로 정책 안전성·신뢰도 ‘추락’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

[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를 향한 과징금 결정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통신3사는 대부분 ‘경쟁과열’을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과징금 처분을 받았지만, 이번엔 공정위로부터 정반대 이유인 ‘경쟁제한’ ‘담합’ 의혹에 따른 과징금 처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방통위와 공정위는 동시에 규제 칼날을 휘둘렀지만, 각 기관의 미묘한 시선 차이에 두 칼날이 부딪히면서 퍼진 굉음이 업계 전체를 강타한 모습이다.

오늘(5일) 공정위는 통신 3사 담합행위 혐의에 과징금 여부 및 규모 결정을 위한 두번째 전원회의를 연다. 지난달 26일에 이어지는 전원회의로, 공정위는 두차례 회의에서 나온 통신3사 입장과 증거들을 종합해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공정위는 통신 3사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에 따른 방통위 규제를 넘어서는 담합을 했다고 봤다. 즉, 정부 행정지도와 별개로 3사가 담합을 했다는 주장이다.

통신3사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지난 2014년 단통법 시행 이후 방통위 행정지도에 따르기 위해 과열경쟁 모니터링 상황반을 만들어 운영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방통위 측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공문을 공정위 측으로 전달했으며, 상황반에서 진행된 3사 간 판매장려금 조율도 담합이 아닌 방통위 행정지도를 따르기 위한 조치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방통위와 공정위 간 ‘규제충돌’이라는 반박이다.

공정위는 규제충돌 논란을 피하기 위해 방통위와 통신 3사를 분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단통법에 기반한 행정지도를 따른 판매장려금 조율'와 '담합 성격 판매장려금 조율'을 구분하는 논리를 세우는데 힘을 쏟고 있다.

전체 상황을 종합해보면, 통신3사의 담합 여부를 살피기 위해 두 규제기관 간의 규제 충돌 여부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어디까지가 방통위 행정지도인지 구분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규제충돌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사업자의 위법성을 가리기도 전에 정부 규제 적정성 여부로 스포트라이트가 나뉘어지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공정위는 “행정지도가 부당한 공동행위의 원인이 됐다 하더라도 그 부당한 공동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하다”는 담합 심사 지침을 근거 삼으며 제재 적정성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지만, 양단 끝에 있는 정반대 성격 규제를 분리하는데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그 결과, 담합 여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규제충돌 논란은 지속됐고, 논의가 희석되는 것은 막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규제충돌 우려는 이미 10여년 전 단통법이 입법되던 시절 이미 예고된 바 있다. 당시 학계에서도 단통법 조항이 이동통신사의 경쟁 자체를 금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시장 독과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정위도 알고, 방통위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해묵은 복잡한 문제들임에도, ‘일단 찍어보자’는 식의 성급한 행정 규제는 규제충돌 논란을 더욱 부각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규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규제충돌 논란은, 그 자체로 행정기관의 정책 안정성·일관성·신뢰성을 동시에 위태롭게 만든다. 특히, 통신 산업과 같이 필연적으로 규제가 따라붙는 업계에서는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규제에 따라 산업 전체 흐름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성급한 단통법 입법과 조급한 공정위 규제가 낳은 결과다. 설령 통신업계가 실제로 카르텔을 구성하고, 부당 이익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규제충돌 논란’으로 점철된 과징금 처분은 통신3사에게 반박할 여지만 가득 안겨줬다. 진정으로 통신 업계 카르텔 여부를 살피고, 소비자 이익 증진을 위한 제재를 가하고 싶었다면, 보다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한다. ‘일단 찍어보고, 아니면 말고’ 방식의 규제는 힘이 없으며, 행정기관 스스로의 권위를 저해하는 행위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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