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우리 나라는 현재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여러 요인에 의해 시시때때로 시장 환율(換率)이 변한다.
현실에서 환율의 시세를 결정하는 변수는 무수히 많다.
특히 수많은 대내외 거시경제 변수외에 북한과의 대치 상태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까지도 매우 민감하게 환율 결정에 작용된다. 한국은 환율을 예측하기가 매우 힘든 나라다.
평상시에도 환율은 마치 술취한 사람이 걷는 것처럼 종잡을 수 없는 '랜덤 워킹'(Random Walking)을 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만약 건강한 시장이라면 이같은 단기 충격에 따른 '오버 슈팅'이 나온다하더라도 환율은 이를 극복하고 빠른 복원력을 발휘한다.
과연 지금 우리 외환 시장은 이같은 빠른 복원력을 보이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원달러환율이 좀처럼 안정을 찾지못하고 있다. 최근 1달러당 1450~1470원 대에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원달러환율이 1500원을 돌파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정국(政局) 불안이 현재까진 유력한 환율 결정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추세를 더 지켜봐야 겠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 안정적인 수준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2024년 12월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이 4156.0억 달러이며, 이는 전월말(4153.9억 달러) 대비 2.1억달러 증가한 수치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 5년간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가장 낮은 수준이란 점에서 불안한 뒷맛이 남는다. 2023년 12월(4201.5억 달러)과 비교하면 50억 달러 가까이 줄어들었다.
환율은 에너지등 수입 물가를 직접적으로 자극하기때문에 대부분의 산업에 민감한 충격파를 던진다.
특히 최근 환율 동향에 매우 예민할 수 밖에 없는 곳이 금융권이다. 당장 KB, 신한, 하나, 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밸류업' 계획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여의도 증권가에선 비록 소폭이지만 4대 금융지주사의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하기 시작했다. 원달러환율의 상승으로 4대 금융지주사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의 하락 등 자산건전성의 악화, 그리고 이것이 밸류업 추진을 위한 기초 체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때문이다.
원달러환율이 오르면 은행의 외화대출자산이 늘어나게되고, 그러만큼 위험가중자산(RWA) 비중이 커지면서 결국 역의 관계인 CET1 비율을 하락시키게 된다.
실제로 밸류업 최선호주로 꼽혀온 KB금융의 4분기 CET1비율은 13.5%로, 전분기(13.9%)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신한, 하나, 우리금융 역시 CET1 비율의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가뜩이나 경쟁사들에 비해 이미 CET1 비율(작년 3분기 기준 12%)이 낮은 우리금융은 밸류업 전략에 더욱 애를 먹을 수 있다. 당초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우리금융은 올해 CET1비율 12.5% 조기달성에 대한 기대를 보였지만 현재는 그 반대 상황이다. 현재와 같은 고환율 상황이 이어진다면 오히려 CET1비율이 11%대로 하락하는 것을 걱정해야할 처지다.
CET1 비율의 하락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 주주환원 전략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증권가에선 그런점에서 금융지주사의 'CET1 비율 13%' 방어 여부를 중시하고 있다.
한편 정국 상황의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밸류업 전략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지난달부터 4대 금융지주의 주가도 맥을 못추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사 CEO들이 최근 적극적으로 밸류업 제고 행보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은 여전히 냉기류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지난 6일 주요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친필 서한을 발송하고, 지난해 10월 발표한 밸류업 계획 이행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앞서 KB금융은 지난달 9일에도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에 따른 투자자 우려와 시장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 글로벌 투자기관들을 대상으로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최근 하나금융지주 보통주 5000주를 주당 평균 단가 5만8862원에 장내매입함으로써 밸류업 의지를 확인했다. 함 회장 뿐만 아니라 강성묵 부회장, 이승열 부회장, 박종무 부사장 등 다수의 경영진에 자사주 매입에 참여했다.
금융지주사들이 밸류업을 강화하는 것은 단순히 주가관리에 있지 않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의 매력도 확대와 자본 유치 등 궁극적으로 기업가치 제고를 통한 업그레이드된 경쟁력 강화가 목표다.
현재로선 4대 금융지주사가 밸류업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체력(자산건전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와관련 IB(투자금융)업계에선 대체로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황을 복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강달러 현상외에 지금과 같은 정국 상황이 계속된다면 외환시장의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4대 금융지주의 밸류업 추진에 결코 좋은 여건은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결국 혼미한 '정국'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올해 4대 금융지주사들이 내건 밸류업 청사진도 공수표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국 상황과는 멀치감치 떨어져있지만 금융권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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