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 망사용료 소송이 8차 변론에 접어들었다. 작년 11월 이후 넉달 만에, 올해 들어 처음 진행되는 변론이다. 이번에는 담당 재판부까지 바뀐 상황이어서 변수가 예상된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9-1부는 29일 오후 4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서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부당이득 반환 소송 제8차 변론을 진행한다.
양사는 2020년 4월부터 2년 가까이 변론을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는 1심에서 패소해 항소를 제기했고 2심 재판은 지난해 11월28일 7차 변론까지 진행된 상태다.
이번 8차 변론은 법원 인사로 재판부가 바뀐 이후 처음으로 속행되는 자리다. 양측의 변론이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 망 이용대가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2심 재판부는 인터넷망의 기본 원리부터 연결 유형, 계약 관행 등 세부 개념을 살피고 있다.
지난 변론까지는 ‘망의 유상성’ 그리고 ‘무정산 합의’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양사는 인터넷 접속 방식인 ‘피어링’(Peering, 직접접속)의 유상성 여부를 두고 충돌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일반망’(퍼블릭 피어링)이 아닌 ‘전용망’(프라이빗 피어링)에 연결된 시점부터 망 이용대가를 지불할 의무가 생겼다고 지적했지만, 넷플릭스는 일반망이든 전용망이든 망 이용대가를 낼 필요가 없다고 피력했다.
또한 SK브로드밴드는 망 연결과 관련한 어떤 계약서도 작성한 바 없다는 입장인 반면,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가 무정산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라 주장한다. SK브로드밴드에 무정산 연결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인 ‘무상상호접속약정서(SFI)’를 보냈지만 답변이 없어, ‘사실상 동의(de facto agreement)’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8차 변론은 재판부 인적 구성이 변한 만큼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넷플릭스는 재판부가 바뀐 데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기존 쟁점을 다시 복기하는 자리를 가진 뒤 추후 변론을 속개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SK브로드밴드는 그러나 넷플릭스가 망을 무상 이용하면서 취한 부당이득이 얼마인지 구체적인 정산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차 변론에서도 변동 전 재판부는 “‘무정산 합의’ 부분 심리를 마치고 다음번에는 감정 방법에 관해 쌍방 의견을 내는 절차로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2월 SK브로드밴드는 법원에 감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지금까지 이용한 망 사용료가 수백억원대에 이른다는 주장을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변론과 이번 변론 사이에 망 이용대가 이슈가 글로벌 이슈로 확전된 것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올해 2월 말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3’이 그 분수령이 됐기 때문이다.
차기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위원장 유력 후보로 꼽히는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은 MWC 기조연설 자리에서 “막대한 (통신망) 투자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자금 조달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C는 현재 글로벌 빅테크들의 망 투자 비용 분담을 골자로 하는 가칭 ‘기가비트연결법(Gigabit Connectivity Act)’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국내 ‘망무임승차방지법’의 경우 입법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망무임승차방지법은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가 국내 전기통신망을 이용할 때 이용계약 체결 또는 이용대가 지급을 의무화 하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 2심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망무임승차방지법이 발의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한 관계자는 “사법부 판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입법부가 먼저 제스처를 취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2심 결론은 연말이 돼야 나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