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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전례없는 주파수 할당취소…사업자 실패인가 정책 실패인가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정부가 KT와 LG유플러스에 대해 5G 28㎓ 주파수 취소라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SK텔레콤도 주파수 이용 기한이 단축되면서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이번 처분을 내렸다는 입장이지만, 사업자들은 애당초 28㎓에 대한 투자 유인이 없다는 점을 토로해왔던 만큼 해석이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1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이종호, 이하 과기정통부)는 2018년 5G 주파수 할당 시 부과한 할당 조건에 대한 이행점검 절차가 완료, 그 결과를 발표했다. 점검 결과, 3.5㎓ 대역의 경우 모든 사업자가 할당 조건을 이행한 것으로 평가됐으나, 28㎓ 대역은 SK텔레콤의 경우 이용 기간 단축, KT와 LG유플러스는 할당 취소 처분이 통지됐다.

지난 2018년 과기정통부의 5G 주파수 할당 공고에 따르면, 통신3사는 28㎓ 주파수를 할당받으면서 3년차까지 각각 1만5000개씩 4만5000개의 장치를 의무구축할 것을 조건으로 부과받았다. 지난해 연말까지 이의 10%에 해당하는 4500개 장치를 구축하지 못할 경우 또는 평가결과 점수가 30점 미만일 경우 주파수 할당이 취소된다. 평가결과 점수가 70점 미만일 때는 시정명령 또는 전체 이용기간의 10% 단축이 이뤄진다.

통신3사는 작년까지 의무수량의 10%를 간신히 넘겨 구축하긴 했지만, 심사위원회로부터 낮은 평가결과 점수를 받았다. SK텔레콤은 30.5점, LG유플러스는 28.9점, KT는 27.3점을 각각 획득했다. 이에 KT와 LG유플러스는 할당 취소가 되었고, SK텔레콤은 이용기간 5년의 10% 단축과 함께 재할당 신청 전인 내년 5월31일까지 당초 할당조건인 1만5000 장치를 구축하지 못할 시 할당이 취소되는 상황에 놓였다.

통신사가 할당받은 주파수를 정부가 전격 취소한 것은 과거 전례가 없던 일이다. 지난 2018년 KT가 800㎒대역 10㎒ 폭을 할당받으면서 부여된 투자 조건을 지키지 않아 이용 기간이 단축된 사례는 있었다. LG유플러스의 경우 2006년 LG텔레콤일 당시 ‘동기식 IMT-2000 사업’을 포기하면서 할당받은 2.1㎓ 3G 주파수를 반납한 적은 있지만, 정부 주도 아래 할당이 취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신사들은 애당초 28㎓ 투자에 대해 난색을 보여왔다. 현재 국내에는 미국·일본 등과 달리 28㎓ 주파수를 활용하는 B2C 5G 단말기가 출시되지 않았고, B2B 관련 활용사례발굴도 여의치 않는 등 전반적인 생태계 자체가 미숙한 실정이다. 이에 통신사들은 정부의 28㎓ 정책에 대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이번 주파수 할당 취소 사태가 정부의 정책 실패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기정통부는 그러나 다른 입장이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주파수 할당 당시부터 28㎓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을 다 고려했다”면서 “점차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지고 또 미국과 일본 등 활용사례가 있는데다 앞으로 28㎓를 하겠다는 국가가 33개국이나 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투자가) 어렵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진배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 역시 “통신사당 1만5000개의 28㎓ 장치를 설치하는 부분은 국 수로 따지면 7500국에 불과하다”며 “(사업자들이 의무수량에 미치지 못한 것은) 정책적 문제라기보다 사업자들이 투자비를 아끼고자 했던 노력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본다”며 책임 소지를 사업자들에 넘겼다. 홍 실장은 “미국은 연말까지 28㎓ 4만국을 투자할 계획이고, 일본은 2만5000국을 이미 구축했다”는 해외 현황도 강조했다.

문제는 이용자 피해다. 통신3사 주도로 28㎓ 주파수를 활용한 서울 지하철 초고속 와이파이가 상용화를 앞둔 상황에서 주파수 할당이 취소될 경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현재 SK텔레콤은 2·8호선, KT는 5·6호선, LG유플러스는 5·7호선에 28㎓ 주파수 초고속 와이파이를 구축한 상태다. 이번 처분에 따라 KT와 LG유플러스가 운영 중인 5·6·7호선 초고속 와이파이 서비스는 중단될 전망이다.

다만 과기정통부는 이에 대해 사업자들과 최대한 협의를 해보겠다는 입장이다. 12월 중 정책 방향을 한번 더 발표할 예정이다. 홍진배 실장은 “일반적으로 28㎓가 스마트폰에 탑재돼 서비스 자체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보다는 미래 소비자 이익이 저해된다고 보여진다”며 “28㎓ 자체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활성화 대책, 경쟁 촉진 방안을 마련해서 28㎓ 활용도를 강구하겠다”고 전했다.

할당이 취소된 2개의 주파수 대역은 각기 다르게 활용된다. 12월 청문절차를 거쳐 2개 사업자가 최종적으로 할당취소되면, 과기정통부는 취소 주파수 대역 중 1개 대역에 대해서는 신규 사업자 진입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잔여 1개 대역은 일정기간 경과 후 경쟁을 통해 공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할당 취소된 2개 사업자 중 1개 사업자에게는 추후 28㎓ 주파수 공급이 제한될 수 있다.

어느 쪽으로나 파격적인 접근이다. 신규 사업자 진입의 경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간통신사업자인 통신사들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28㎓ 구축을, 신규 사업자가 잘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은 지나친 낙관으로 비춰질 수 있다. 정부도 이 점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수조원의 투자가 필요한 3.5㎓와 달리 28㎓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할 수 있는 모델이 다양할 것”이라는 게 과기정통부의 관측이다.

정부가 신규 사업자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곧 기존 통신사들 가운데 한 곳은 28㎓ 주파수를 쓰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적어도 28㎓ 대역에 관해서는 ‘통신3사’가 아닌 ‘통신2사’ 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기정통부는 할당 조건을 이행하지 않는 사업자들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이행강제금 등 제도적 방안 마련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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