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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데이] 2002.8.20. 국민기업 KT 민영화

디데이(D-Day). 사전적 의미는 중요한 작전이나 변화가 예정된 날입니다. 군사 공격 개시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변화를 촉발하는 날. 바로 디데이입니다. <디지털데일리>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 나름 의미 있는 변화의 화두를 던졌던 역사적 디데이를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그날의 사건이 ICT 시장에 어떠한 의미를 던졌고, 그리고 그 여파가 현재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2년 8월 20일은 KT가 민영화된 날입니다. KT는 정부 품에서 태어난 기업입니다. 1981년 체신부에서 분리돼 1982년 출범한 한국전기통신공사(이하 한국통신)가 KT의 전신이죠.

‘삐삐’ 등 무선호출서비스를 담당했던 한국통신의 이동통신 서비스 위탁 자회사 ‘한국이동통신’이 선경그룹(현 SK그룹)에 넘어가면서 지금의 ‘SK텔레콤’이 된 것, 그리고 한국통신이 금성사, 대한전선 등을 초기 출자자로 참여시키면서 설립을 주도했던 ‘한국데이타통신’이 지분 매각과 인수합병 등을 통해 현재의 ‘LG유플러스’가 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현재의 통신3사는 모두 뿌리가 같은 셈입니다.

KT가 아직까지 통신업계의 ‘맏형’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인식은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죠. 현재의 KT가 민영화되기까지는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1982년 한국통신을 출범시키면서 정보통신분야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발전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선진국들의 압박에 따른 대대적 통신 개방이 추진되면서 민영화 논의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한국통신의 민영화는 1987년 정부가 발표한 공기업 민영화 계획 방안에 포함됐고, 이후 정부는 1993년부터 단계적으로 지분 매각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1998년 12월엔 국내 증시에 상장했습니다. 당시 IMF로 국가 경제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공기업의 민영화 흐름이 가속화됐고 한국통신은 1999년 1차 해외DR(주식예탁증서)을 발행하며 뉴욕증시에 상장했습니다.

2001년엔 기존 ‘한국통신’에서 ‘KT’로 사명을 변경하며 민영화에 들어서는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참고로 ‘KT’라는 영문명칭은 해외 통신사업자들이 자국의 국가명칭에 텔레콤(Telecom)의 이니셜인 T를 덧붙여 AT&T·BT·FT 등과 같이 표기한 것에 맞춘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상철 한국통신 사장은 “이번 기업브랜드 변경의 가장 본질적 의도는 민영화에 대비해 과거의 딱딱하던 공기업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고객에게 보다 친근한 기업, 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려는데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후 2002년 5월 정부는 보유하고 있던 KT 지분 전량을 국내와 해외에 모두 매각했습니다. 마침내 2002년 8월 20일엔 임시 주총을 열어 이용경 신임 사장을 선임하고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등의 정관변경과 사외이사 선임 등 안건을 의결하면서 지난 15년 간 추진해왔던 민영화 작업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2021년 말 기준 KT의 지분은 외국인이 43.33%, 국내 기관 및 개인이 33.93%, 국민연금이 12.68%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02년 8월 사기업이 된 KT는 유무선 인프라 고도화에 발 빠르게 뛰어들었습니다. 이때 KT는 13Mbps급의 VDSL을 국내 최초로 상용화 하면서 당해 국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000만을 주도했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이용률은 전세계 1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국내 전체 1430만 가구의 70%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급률로 비교하면, 캐나다의 약 2배, 미국의 4배, 일본의 8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전세계 유례없이 빠른 인터넷 보급률과 서비스 속도는 다양한 IT사업을 개척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인들에게 힘을 보탰고 IT산업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든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자상거래, 디지털 콘텐츠, 온라인 게임 등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들이 새로이 탄생했고 2000년대 글로벌 경제 모범국으로 평가 받는 대한민국을 이끈 주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4년엔 50Mbps급 VDSL을 상용화하고 2007년 광케이블 기반(FTTH) 100Mbps 속도로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해 IPTV 등 대용량 미디어 인프라 고도화를 앞당겼고, 2008년 업계 최초로 IPTV를 본격 상용화 했습니다. 현재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대세가 되고 있지만 당시 IPTV 등장은 기존 공급자 중심의 콘텐츠 공급을 소비자 중심으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이와 함께 KT는 국가 대표 통신기업으로서 글로벌 통신 확대와 남북통신교류에도 앞장서 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02년 아시아태평양 8개국 해저 광케이블을 개통해 국제 인터넷 품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고, 2005년엔 KT 문산지점과 북한의 개성전화국의 광케이블을 서로 연결하고 개성공단에 KT지사를 설립함으로써 남북간 통신 교류의 물꼬를 트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9년엔 국내 최초로 아이폰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스마트 혁명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로부터 10년 후인 2019년엔 대한민국이 전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텔코’를 넘어 ‘디지코(디지털플랫폼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게 됩니다.

2020년 구현모 사장 취임 이후 발표한 ‘디지코’는 유무선 네트워크의 기반 위에서 ABC(AI, 빅데이터, 클라우드) 기술 역량을 활용해 다양한 고객 중심의 플랫폼으로 혁신을 이루겠다는 의미입니다. 미디어콘텐츠, 금융, 커머스, 헬스케어, 부동산, AI, 로봇, 클라우드를 핵심 성장사업으로 선정하고 다양한 산업영역의 디지털 전환(DX)을 돕고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콘텐츠 사업에 대한 승부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역대급 흥행으로 결실을 맺고 있고 있습니다. 미디어 외에 K뱅크, BC카드와 같은 금융 및 KT 클라우드와 같은 IT 영역 중심으로 지주형으로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같은 KT의 ‘디지코’ 전환 전략은 실제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올해 상반기 연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4% 늘어난 12조5899억원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지난 8월 1일 주가는 3만8350원으로 구현모 대표가 취임한 2020년 3월 30일 1만9700원 대비 2배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이로 인해 KT 시가총액이 2013년 6월 이후 9년만에 1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8월 19일 종가는 전일 대비 1.71% 상승한 3만8650원에 마감되며 순항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에서는 KT가 과도한 ‘탈통신’ 행보로 본업인 통신사업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민영화에 성공한지 20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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