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찻잔속의 태풍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됐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시간이 지날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히, 저렴한 유료방송 요금때문에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으로 평가됐던 넷플릭스는 사실상 콘텐츠 시장의 블랙홀로 점점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방송사들보다 규모의 경제면에서 압도하면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간 거래구조도 변화시키고 있다.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본을 이용해 국내 대형 콘텐츠를 싹쓸이 중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 국내 시장 진출 후 7000억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킹덤 시리즈를 비롯해 최근엔 300억원을 들여 스위트홈을 선보였다. 킹덤은 좀비물에서 한국 콘텐츠의 존재감을 뚜렷히 각인시켰고 스위트홈은 세계 넷플릭스 순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지난해 일본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제작비만 430억원에 달하는 미스터 선샤인은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내 방송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넷플릭스는 아예 경기도 파주와 연천에 위치한 콘텐츠 스튜디오와 임대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제대로 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도 넷플릭스 공습은 계속된다. 영화 차인표를 시작으로 승리호, 킹덤 아신전, 고요의 바다 등의 콘텐츠들도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있다.
외주 제작사 입장에서는 방송사가 더 이상 제1의 창구가 아니라 더 많고 해외진출까지 가능한 창구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하다. 디즈니플러스 등을 비롯해 OTT간 경쟁이 활성화 되면 드라마 등의 프로그램 제작단가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0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를 통해 OTT 시장진입이 외주제작 거래 협상력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예능이나 교양 콘텐츠 보다는 드라마 부문에서 영향이 클 것으로 조사됐다. 드라마의 경우 5점 만점 중 4.25점 가량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3.78점인 교양, 예능보다 높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거대자본으로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해외진출을 하려면 글로벌 OTT와 손을 잡아야 유리한 것도 현실이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들은 연간 두편 정도 넷플릭스에 제공한다는 내용의 MOU를 비공식적으로 맺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넷플릭스 등 OTT는 방송사들에게는 거래 협상력 약화, 자체 콘텐츠 경쟁력 약화 등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다. 지상파 방송사별로 넷플릭스 효과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엇갈리지만 제작사와의 협상력 약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거대 자본의 진입으로 양질의 프로그램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0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방송사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상파 A사 관계자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방송사가 더 이상 제1의 창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협상시 우위에 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며 "현재 방송사와 제작사간 거래 협상력 변화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도 "방송사 콘텐츠도 OTT로 서비스 되기 때문에 무조건 OTT를 적대시하거나 라이벌이라고 할수도 없다"면서도 "코로나19로 OTT 시장도 성장하고 구독자수가 늘어나는데 특히 넷플릭스는 방송사에게 커다란 위협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종편PP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아직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프로그램 수급 등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종편 A사 관계자는 "OTT의 주 거래원은 종편이 아니다보니 방송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며 "하지만 제작사 입장에서는 넷플릭스와 함께 했을 때 기대수익도 더 크기 때문에 양질의 작품들이 방송사에 올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종편 관계자도 "OTT가 현재 드라마 부문에 집중하고 있는데 제작지 지원이 방송사에 비해 상당히 규모가 크다"며 "이에 따른 제작비 상승은 방송사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비를 더 많이 집행하는 OTT와의 계약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