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통신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약탈적 요금, 또는 요금인상을 막기 위해 도입된 요금인가제도가 30년만에 폐지됐다.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로 독점적 경쟁력을 가진 사업자가 사라졌고 당초 제도 도입 취지와는 달리 시장 자율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요금인가제 폐지안이 포함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신요금 인가제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과도한 요금인상 또는 약탈적 요금인하를 방지해 후발사업자 보호를 통해 유효한 경쟁시장을 구축하기 위해 도입됐다. 1991년 도입돼 현재 SK텔레콤의 이동전화, KT의 시내전화가 인가제 적용을 받고 있다.
오랜 기간동안 이동전화 시장은 5:3:2로 고착화된 시장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50%를 넘기던 SK텔레콤의 점유율은 40% 초반대로 낮아졌다. KT도 20대 중반대로 점유율이 축소된 반면 LG유플러스는 10%대에서 20%로 점유율을 확대했고 알뜰폰은 10% 점유율을 가져갔다. SK텔레콤이 특별한 지배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시장이 된 것이다.
시내전화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 전화가 도입되면서 KT의 공고했던 유선전화 시장점유율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이동전화 시장이 커지면서 유선전화의 경우 인가제 폐지와 관련해 별다른 논의조차 없는 상황이다.
통신시장 환경이 이렇게 변하면서 요금인가제도 역시 도입 당시의 취지가 사라졌다. 요금인가제 대상인 SK텔레콤의 요금이 결정되면 KT와 LG유플러스가 유사한 요금제를 신고하는 경우가 반복됐다. 속사정을 모르는 이가 보면 통신3사가 매번 담합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 LTE 무제한 요금제 도입 당시 정부가 인가접수를 반려하며 최종 인가까지 수개월이 소요되기도 했다. 요금인가제가 오히려 사업자간 자유로운 요금, 서비스 경쟁을 저해한 것이다.
이에 지난 19대 국회때 폐지 법안이 발의됐고 국회 문턱을 넘는가 했지만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추진 등으로 인해 규제완화 기조가 급변하면서 결국 불발됐다.
20대 국회 들어 박선숙, 변재일 등 다수 의원들이 요금인가제 폐지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개정안을 발의했다. 결국 30년가량 유지되던 요금인가제도는 20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유보신고제 도입…15일의 안전장치 마련=하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요금인가제 폐지가 요금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한다.
최근 시민단체 7곳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요금인가제 폐지를 포함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 단체는 “요금인가제 폐지가 포함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사실상 통신요금인상법이나 마찬가지”라며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이동통신 서비스의 공공성을 폐기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SK텔레콤도 신고를 통해 요금인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요금인가제 폐지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우려에 따라 요금인가제는 폐지되지만 유보신고제가 새롭게 도입된다. 정부는 유보신고제를 통해 15일 이내에 요금을 반려할 수 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요금인상 가능성에 대해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요금과 관련한 정부의 절차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 권한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가제 폐지로 요금경쟁?…자율경쟁 환경 조성이 우선=통신요금 인가제 폐지가 시행됨에 따라 통신시장에 활발한 요금경쟁이 펼쳐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만 인가제 폐지로 단기간에 통신요금이 인상되거나 큰 폭으로 인하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고가 요금제에 혜택이 집중될 경우 15일간의 검토를 통해 반려시킬 수 있다. 또한 현재의 경쟁상황을 감안할 때 대폭적인 요금인하로 후발사업자를 고사시키는 전략은 힘들다. 경쟁사의 요금따라하기 관행이 이어질 가능성 역시 남아있다.
요금인가제도가 폐지돼도 당장 통신시장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통신요금 인하는 인가제 페지가 핵심이 아니라 사업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사업자 역시 암묵적 담합을 택할 것이 아니라 보다 창의적인 요금제와 서비스를 출시하겠다는 정책적 의지가 필요하다.
3G 시장에서의 KTF(현 KT)의 무모한 마케팅, SK텔레콤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도입, LG유플러스의 LTE 올인 정책 등은 요금은 물론, 설비 투자 경쟁으로 이어진 바 있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법사위에서 "요금인상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만 15일 이내 반려할 수 있게 돼있다"며 "인가제를 폐지하는 것은 시장자율경쟁 체제로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제도 폐지 취지를 설명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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