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흔히 네트워크망은 고속도로에 비유된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나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점이 같다. 교통 혼잡을 피하려면 낡은 도로는 수리하고 4차선은 6차선 8차선으로 확장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다 보니 요즘엔 민간 자본이 주로 투입되고 있다. 도로를 마냥 공공재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다.
망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제공사업자(ISP)인 통신사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망 품질을 관리한다. 콘텐츠제공사업자(CP)는 이 망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국내 CP와 달리 해외 CP들이 통행료에 해당하는 망 사용료를 거의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규제가 미치지 않아 배짱을 부려도 막을 도리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다. 얼마 전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상당한 트래픽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망 사용료 협상은 거부하고 있다며 정부에 중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즉각 넷플릭스에 반박 질의서를 보냈으나 몇 달 만에 불충분한 답변만 겨우 받았다.
넷플릭스는 굳이 망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방통위 중재 와중에도 “우리는 전 세계 네트워크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1000여개 ISP 사업자들에게 오픈 커넥트 프로그램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밝혀 빈축을 샀다. 사실상 방통위의 질의에 대한 무성의한 답변으로 읽힌다.
오픈 커넥트는 쉽게 말해 통신사 네트워크에 캐시서버를 설치해 회원들이 자주 시청하는 콘텐츠를 새벽 시간대에 미리 저장해 두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트래픽 과부하를 조금이나마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새벽 시간에만 물건을 배송할 테니 고속도로 통행료는 내지 않겠다는 궤변이나 마찬가지다.
캐시서버는 원활한 서비스를 위한 보완 장비일 뿐 망 사용료와는 별개다. 새벽이든 한낮이든 물건을 배송하는 대형 트럭이 통행료를 내지 않고 지나간다면 무임승차에 불과하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CP들은 캐시서버 운영과 별도로 망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는데 그 액수가 이미 해외 CP의 6배에 달하고 있다.
글로벌 CP들이 정당한 대가를 내지 않은 결과는 이용자 피해로 이어진다. 망 사용료 협상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접속경로 변경으로 서비스를 제한한 페이스북이나 최근 국내 통신사에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유튜브 화질을 낮춰 불만을 초래한 구글은 이들 CP가 얼마든지 망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트래픽의 약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일 플랫폼 사업자로는 독보적인 규모다. 국내에서도 데이터 트래픽의 과반은 해외 CP가 만들어낸다. 이들이 국내 시장과 이용자를 존중한다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지위로 이용자를 볼모로 삼아 망 사용료를 나 몰라라 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