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정부가 국회 요구에 따라 유료방송 규제개선안을 합의했으나, 정작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법안소위는 파업 상태다. 국회 문턱을 넘어야 정부안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갈 길이 막혔다. 통신‧방송업계의 유료방송 인수합병(M&A)까지 맞물린 만큼 조속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답보상태에 놓인 국회 상황에 유료방송 규제개선안이 표류할까 우려되고 있다.
지난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이견을 극복하고 합산규제 일몰에 따른 후속대책인 유료방송 규제개선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 양 부처는 ▲유료방송 이용요금 신고제 전환 ▲이용요금 승인대상 지정 주체 ▲사전동의 절차 신설 ▲결합상품 시장 분석 ▲유료방송 다양성 제고 ▲위성방송 공적책임 강화 등과 관련해 의견을 모았다.
‘합산규제’는 국회 과방위가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대표적인 안건이다. 합산규제는 케이블TV, 위성방송, 인터넷TV(IPTV) 사업자가 특수 관계자인 타 유료방송 사업자를 합산해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수 3분의 1을 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2015년 합산규제 법안이 3년 일몰을 조건으로 국회 통과했고 지난해 6월27일 일몰됐다. 일몰 1년4개월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후속논의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8월 내 합산규제 관련 사후규제방안을 확정하겠다고 한 과방위 약속은 결국 공(空)언에 그쳤다. 약속된 시일은 지났으나, 조만간 과기정통부와 방통위가 유료방송시장 규제개선 방안 정부 최종안을 국회에 제출하게 되면 과방위는 법안소위를 열고 해당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문제는 과방위 법안소위가 감감무소식이라는 점이다.
한 달에 최소 한 번 이상 법안소위를 열어 심사하도록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이 시행 100일이 지났지만, 과방위는 지난 7월15일부터 소위를 단 한 차례 열었을 뿐이다. 소위처리 법안은 29건에 불과하다. 과방위에 계류된 법안은 700건이 넘는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다음 달 막을 내리고, 총선까지 다가오고 있어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노웅래 과방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통해 “밀려 있는 법들 대부분은 당리당략과 상관없고, 민생문제와 경제를 해결해야 하는 법들이다. 그럼에도 논의조차 못 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국회법에 따라 법안소위 날짜를 당연히 잡아야 한다. 만약 이대로 국회를 마친다면 국민에게 대죄를 짓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 분위기가 녹록치 않다.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안보상황 인식과 강기정 정무수석 답변 태도 등을 놓고 여야는 대치하고 있으며 국회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6일 오전 예산결산특위 전체회의는 무산됐고 패스스트랙 협상도 중단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과방위 법안소위 개최유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과방위는 산적한 경제‧민생 법안을 해결해야 하는 본연의 책무와 함께 유료방송 규제개선과 관련해서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 지난 4월 과방위 여야위원은 법안소위에서 논의 끝에 합산규제 일몰에 대한 사후규제 방안을 5월16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방통위를 이해관계자로 참여시켰다. 이 과정에서 부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며,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을 보였다. 이에 과방위는 지난 7월 양 부처 소관다툼을 지적하며 단일안을 한 달 뒤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늦게나마 정부가 부처갈등을 봉합하고 국회에 합의안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과방위는 합산규제 일몰과 관련해 명확한 의사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사실상 합산규제 일몰을 시사하기는 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의원마다 생각은 다르다. 김성수 의원(더불어민주당)측은 합산규제 재도입에 대해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나, 김성태 의원(자유한국당) 측은 재도입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과방위 여야 간 통합된 의견 아래 유료방송 규제개선안과 관련한 명료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이 경쟁당국 심사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정부정책과 국회 결정에 따라 KT M&A 향방도 결정된다. 통신‧방송 M&A 정부심사가 완료되기 전 유료방송 규제개선안이 확정돼야, 시장에 제대로 적용 가능하다. 이는 관련 기업들의 일정 및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회 관계자는 “현재 한국당이 법안소위를 개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합산규제를 비롯해 모든 계류 법률안은 폐기될 것”이라며 “20대 국회에서 아무런 법안 처리도 하지 않고 선거를 치러보겠다는 심산인데, 그 피해는 국민, 경제, 기업들에게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제출한 합산규제 일몰 이후 대체안에 대해서도 M&A 완료 이전에 방향을 제시해야 시장에서 혼란이 없을 것”이라며 “결국 국회에서 해당안을 논의하지 못하면 시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