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를 고립시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보호를 이유로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와 68개 자회사를 거래제한 기업명단에 올렸다. 중국에서는 미국의 내정간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커지는 중국의 IT 기술력을 견제하기 위한 강경책이다.
이와 관련 박석중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28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화웨이와 중국 첨단산업을 견제하는 이유는 5G 인프라 구축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중국의 첨단산업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고, 향후 실무협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라며 “주요국을 미국 우방으로 확보해 견제 강도 심화 효과를 가진다”고 말했다.
화웨이 사태를 보려면, 미‧중 무역전쟁을 살펴봐야 한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중국을 향해 관세 부과를 예고한 바 있다. 2017년 트럼프 취임 후 보호 무역주의가 본격화됐고, 16개국 대상 무역적자 원인 분석에 나서게 된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적자 규모를 2016년 기준 약 3470억달러로 집계했다. 2017년에는 3752억달러로 전년대비 8%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2017년 4월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열고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을 합의했지만, 결론적으로 타결에 실패했다. 이후 미국은 태양광 패널, 세탁기, 철강, 알루미늄 등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5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도 농산물과 자동차 등 연 500억달러 규모 일부 미국산 수입품에 25%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관세전쟁이 펼쳐졌다.
이후 지난해 12월 잠시 양국 휴전 합의에 성공하며 협상에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는 듯 했으나, 올해 5월 상황은 급변했다. 돌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트위터를 통해 10일부터 2000억달러 중국산 수입품에 적용하는 관세를 기존 1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했다. 현재 미국은 고율 관세를 적용 중이다.
여기에 더해 15일 화웨이 거래금지 과행정명령에 서명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른다. 중국도 현지 진출 미국 기업에 행정조치, IT 수입품목 제한, 희토류 수출 중단, 미국채 매각 등을 시사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G2 분쟁 본질은 통상에 있지 않다. 헤게모니 충돌과 주력산업 경쟁구도 심화가 핵심 쟁점”이라며 “화웨이를 견제하는 이유는 5G를 기반으로 한 기술전쟁, 국방과 안보, 우방국가를 포섭하고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화웨이는 170개 국가와 40여개 통신사에 통신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글로벌 1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네트워크 장비업체다. 지난해 5G 부문에만 14억달러를 투자하고, 5G 특허에서도 선두주자다. 5G 기지국 공급은 7만개를 넘어섰다.
중국의 산업 고도화는 5G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신산업을 필두로 한다. 화웨이 5G 기술력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이 추진하는 제조2025와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가 성공한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주도권을 뺏길 수 있는 위기다. 일대일로의 경우, 152개국이 협력하기로 했다.
박 연구원은 “일대일로 세레모니에 중국이 집중한 국가는 유럽이며, 적극적 참여 의사를 타진한 국가 대부분이 화웨이 5G 장비 도입과 일대일로 참여를 반대하는 미국 요구를 보이콧했다. 대표 국가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이다”며 “미국은 첨단 기술, 금융, 경제력을 기반으로 주변국을 압박해 중국과의 연대를 막고 있으며 그 시작점이 화웨이 제재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도 미중 무역전쟁 영향권 내에 있다. 지난해 화웨이가 한국에서 납품받은 부품 수입규모는 16억5000만달러로 한국 대중 수출의 6.6%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국내 통신망에도 화웨이 장비가 도입됐다.
이와 관련 박 연구원은 “한국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미국, 경제와 통상에서는 중국의 절대적 영향력 안에 있어 미‧중과 연계된 정치적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이라며 “화웨이 사태 진정 여부를 떠나 미중 분쟁은 글로벌 테크, 금융, 안보 전역에 새로운 생태계 조성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국내 업체의 생존과 경쟁력 확보에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