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형두기자] “카카오벤처스가 내세우는 것, 진정성과 ‘창업자 존경’이다. 말로 들으면 당연한 건데, 이걸 제대로 이행하는 투자사는 잘 없다. 좋은 창업자와 팀은 시장에 그리 많지 않다. VC(벤처캐피탈)가 창업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 ‘우리에게 돈이 있으니까 잘 보여라’ 이런 태도는 결국 투자사를 망친다.”(장동욱 카카오벤처스 수석팀장)
우수한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 애플이나 구글도 설립 초기에는 벤처투자를 받았다. 그러나 자금은 한정적이고 투자를 원하는 스타트업은 많다. 투자 유치까지 문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VC 투자심사역의 ‘갑질’이 나올 개연성이 있다.
카카오벤처스 심사역 3인방은 판교 사무실에서 지난 22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VC가 창업가의 ‘동반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장동욱 카카오벤처스 수석팀장은 “이 같은 태도는 회사 브랜딩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결국 성과와도 연동된다”며 “레퓨테이션(명성)을 망치면 좋은 팀을 놓치게 되고, 결국 큰 손해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장 수석팀장은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 팀을 예로 들었다. 당근마켓 팀은 과거 다른 사업으로 엑시트(투자금 회수) 경험이 있다. 굳이 VC투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뛰어난 팀으로 평가받는다. 카카오벤처스는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이 팀에 관심과 정성을 쏟았다. 대표와 심사역이 간식을 사 들고 사무실을 방문하기도 하며 꾸준히 소통을 이어갔다. 이는 결국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당근마켓이 카카오벤처스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심사역은 ‘짬뽕’ 같은 일을 한다. 기자처럼 또 다른 전문가를 찾아 조언을 듣기도 하고, 동시에 사업가, 서포터 마인드도 있어야 한다. 영업 직군처럼 다른 투자자와 만나 네트워킹을 하기도, 외교관처럼 대사관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핵심은 항상 같다. 프론트에 있는 창업가들이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 고민하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카카오벤처스에서 서비스 부문 투자 심사를 맡고 있는 최동현 투자팀장의 설명이다.
◆다른 VC와 차별점 ‘전문성’과 ‘패밀리’ 문화 = 정성, 진정성 외에도 눈에 띄는 차별점도 VC에 필요하다. 시장에 자금이 많이 풀리면서 VC 숫자도 많이 늘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국내 VC 숫자는 129개다. 이들 가운데서 카카오벤처스의 차별화 포인트는 전문성과 ‘패밀리(카카오벤처스가 투자 포트폴리오 회사를 일컫는 표현)’ 문화다.
게임 분야 투자 심사를 맡고 있는 김지웅 투자팀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엔씨소프트, 네시삼십삼분을 거쳤다. VC가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 신민균 전 케이큐브벤처스 공동대표가 합류 제안을 했다. 신민균 대표는 “투자에 대해 하나도 몰라도 된다. 게임만 잘 보면 된다”고 했다.
김 투자팀장이 가진 경험과 업계 이해도는 게임사 스타트업 대표들과 소통에 큰 도움이 됐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외롭고 정신적으로도 힘들다. 어려운 상황을 직원이나 외부에 털어놓기도 어렵다. 그는 “많은 투자 지식을 갖추는 것 보다, 오히려 패밀리사 대표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대표들이 ‘이런 문제 때문에 힘들다’고 할 때, 즉각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솔루션 대신 김 투자팀장은 ‘진짜 힘드실 것 같다. 저도 겪어본 일이라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간다’고 감정적인 부분에서 먼저 다가갈 수 있었다. 공감대를 형성하자 대표들 역시 정서적인 거부감이 크게 줄었다.
패밀리사의 후속 투자를 돕는 과정에서 직접 IR(기업설명회)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후속 투자자 입장에서는 선행 투자를 했던 VC의 의견을 궁금해 한다. 장 수석팀장은 “스타트업에서 보는 회사의 미래와 투자사가 바라는 미래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IR 장소까지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 소개를 도우며 스타트업과 VC의 관점 갭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패밀리 간 네트워킹 성과가 뛰어난 것도 카카오벤처스의 특장점이다. 정기적으로 패밀리사 대표들이 참여하는 ‘패밀리 데이’가 있다. 타깃 유저가 비슷하거나 유사점이 많은 업계가 모이는 소규모 ‘패밀리 번개’도 진행한다. 공통점이 있는 스타트업끼리 묶어놓으면 시너지가 난다. 조언을 구하고 서로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 행사가 인연이 돼 이후 만남을 이어가는 대표들도 많다. 성과가 좋아 다른 VC가 자문을 구할 정도다.
장동욱 수석팀장은 “저희가 줄 수 있는 벨류(가치)도 있지만 창업자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저희 투자팀은 8명이지만 패밀리사 대표는 135명, 그들끼리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벤처스, 요즘 어떤 회사에 투자하나? = 카카오벤처스는 올해 4월 패션 공유 플랫폼 ‘더클로젯’에 투자했다. 김지웅 투자팀장은 “최근 회사 차원에서 굵직하게 세우고 있는 기준이 있는데, ‘기술이나 콘텐츠 방향이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하는가’를 중요하게 본다”며 투자 배경을 밝혔다.
더클로젯은 옷장 속 사용하지 않는 가방, 의류를 이용자끼리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주요 가입자는 2030 직장인 여성이다. 젊은 세대는 고령층 대비 의류를 공유하는 것에 거부감이 적다.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경향도 강하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매월 평균 6~7만원 정도 비용이 들지만 재구매율이 90% 수준으로 만족도가 높다.
김 투자팀장은 “사업성을 검토할 때, 당장의 수익성이 낮더라도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세련된 비즈니스를 펼 수 있는가를 본다”며 “이 세대를 플랫폼에 담아두면 향후 이들이 적극적인 소비층이 됐을 때 폭발적인 소비를 수혜로 얻을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최 투자팀장은 게임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과거엔 직접 하는 게임만 상품성이 있었다면, 현재 어린 세대는 ‘보는 게임’도 그 못지않게 즐긴다. 트위치TV, 아프리카TV의 상승세, 각종 e스포츠 관람 문화가 대표적이다. 관중의 상당수를 여성, 어린 학생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중요한 트렌드 변화다. 그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움직임을 보면 기존 소비 계층과 분명 다른 시그널이 있다. 그런 부분이 잘 반영됐는지 굉장히 집중해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장동욱 수석팀장은 “카카오벤처스가 닿기 어려운 투자사가 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벤처스는 공식적으로 투자 제안서를 받는 창구 외에도 미팅 접수를 받는 채널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학생, 창업자, VC에 관계없이 선착순으로 6팀을 받는다.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궁금증도 풀어준다. 이 채널을 통해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김지웅 투자팀장은 투자 유치가 필요한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거절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전했다.
그는 “대표들이 한 번 미팅 후에 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면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0번, 20번 많은 거절을 당하더라도 ‘부족한 것이 뭘까’ ‘장점으로 뭘 부각할까’ 계속 디벨롭하면서 단단해져야 한다”며 “한 번 드롭(Drop)했던 회사들도 다시 들춰보는 경우가 많다. 업데이트를 계속 주시는 회사들도 많다”고 보탰다.
한편, 카카오벤처스는 주로 초기(Seed)부터 성장(시리즈 A)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 업비트 운영사로 잘 알려진 ‘두나무’를 초기 발굴했다. 지난해 말 기준 6호 펀드까지 조성해 총 2046억원을 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