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보편요금제 도입을 놓고 규제개혁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이하 규개위)가 장시간 토론을 진행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개위는 지난 27일 회의를 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마련한 보편요금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규제 대상인 SK텔레콤을 비롯해 법조계,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청취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오는 5월 11일 회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보편요금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본료 폐지 공약의 대안으로 부상했다. 기본료 폐지가 법적 근거가 없고 스마트폰 요금제의 경우 일률적으로 1만1000원 가량의 기본료가 책정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 때문에 정부도 밀어붙이기 쉽지 않았다.
보편요금제는 정부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저가요금 한 구간을 사실상 설계하는 것이다. 하나의 요금제를 설정하는 것이지만 요금수준이 한 단계 낮춰지는 것이기 때문에 도미노처럼 대다수 요금제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SK텔레콤은 지나치게 강한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알뜰폰 사업자들이 이미 보편요금제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보편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이통3사는 물론, 알뜰폰 사업자들까지 고사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CJ헬로는 월 1만9800원에 데이터를 10GB 제공하는 '슈퍼 보편요금제'를 출시한 바 있다. 2만원 초중반대에 데이터 1.5GB에 음성통화 200분을 제공하는 상품들도 있다. 유심요금제를 사용할 경우 가격은 더 낮아진다. 프로모션이기는 하지만 이통사들의 절반 수준인 3만원대에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서비스하기도 한다.
알뜰폰의 시장점유율은 12% 가량이다. 하지만 보편요금제 수준에 해당하는 구간인 3만원대 이하 요금제에서는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저가구간 요금제에서 경쟁활성화라는 제도 도입 목표에 부합한 셈이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이미 서비스 되고 있는 보편요금제를 굳이 이통사들에게까지 적용시키려는 것일까.
알뜰폰은 이통사 망을 빌려쓰기 때문에 품질은 동일하다. 하지만 이통사 자회사나 CJ헬로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세한 중소 사업자들이다. 대고객 업무도 약하고 브랜드 경쟁력도 떨어진다. 여기에 결합상품, 다양한 제휴 서비스, 프리미엄 단말기 등 이통사들이 제공하는 혜택도 없다. 그렇다보니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통 3사가 보편요금제를 도입해야 대선 당시 제시됐던 기본료 폐지 공약 수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알뜰폰의 브랜드, 다양한 혜택 등을 감안하면 알뜰폰을 통한 보편요금제 도입 목표 달성은 어렵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그동안 저가 요금제에서 강세를 보였던 알뜰폰은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또한 통신관련 주무부처에서 꾸준히 추진해왔던 경쟁정책이 후퇴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과기정통부는 보편요금제 도입시 해당구간에 도매대가 특례제도를 도입해 알뜰폰이 요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보편요금제의 여파가 특정 구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례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불가피하다. 갈수록 압박을 받고 있는 SK텔레콤과의 협상은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과기정통부가 출범한 이후 단행한 통신비 절감 정책은 모두 이통3사를 겨냥했다. 이통사들의 요금이 낮아질수록 알뜰폰의 생존은 어려울 수 있다. 파급력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보편요금제 도입 후에도 이통사들과 알뜰폰이 양립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