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넥슨(한국대표 이정헌)이 올해 1월 출시한 ‘야생의땅:듀랑고’는 회사 입장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모바일게임이다.
넥슨 왓스튜디오(디렉터 이은석)가 개발한 이 게임은 기존의 장르 문법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시도가 많이 담긴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개발기간도 대형 PC온라인게임과 맞먹을 만큼 길어졌다. 여느 게임보다 많은 고민과 품이 들어갔지만 ‘착한 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과금 부담이 덜해 시선을 끌었다. 국내 매출 성과는 아쉬운 상황이나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가 기대되고 있다.
듀랑고는 앞서 넥슨이 ‘전례 없던 게임’으로 소개한 바 있다. 공룡 시대에 불시착한 현대인들의 생존과 개척 그리고 공동체 형성의 재미를 구현한 게임으로 기존 게임 대비 제작, 건설, 요리, 농사 등 생활형 콘텐츠가 대단히 풍부한 것이 눈에 띈다. 게임 인구 밀도에 따라 다양한 섬이 무작위로 생성되고 사라진다는 점도 시선을 끌었다.
양승명 듀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4일 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 강연에서 게임의 초기 기획인 ‘거대 대륙모델’을 꺼내 놨다. 모든 이용자가 한 대륙에서 게임을 즐기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 밀도 확보라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서 여러 대륙 모델을 고민하게 된다.
섬을 무작위로 생기게만 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인구 밀도 확보라는 같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이 무작위로 생겼다가 없어지는 대륙 모델로 가닥을 잡았지만 기존 이용자들이 개척한 사유지가 있는 섬을 없앨 순 없었다. 이 같은 대륙 모델로는 인구 밀도 확보가 쉽지 않았다. 결론에 도달한 대륙 모델은 ‘안정섬’과 ‘불안정섬’이다. 사유지를 개척할 수 있는 안정섬과 탐험할만한 새로운 불안정섬을 주기적으로 생기게 했다가 사리지게 하면서 게임 내 적절한 인구 밀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공룡시대에 불시착해 조난을 당한 이용자들에게 어떤 경험을 줘야 하나’라는 것도 고민거리였다. 기존 게임처럼 정해진 대로 퀘스트(임무) 진행을 적용해선 조난당했다는 느낌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 디렉터는 “프로토타입(시범제작물)은 수많은 생존 게이지를 만들어 이 게이지의 부족을 해결하는 게임이었다”며 “작은 화면에 많은 숫자를 전달하는 UX(사용자경험) 문제도 있었고 죽지 않기 위한 게임 플레이로 이용자가 발전하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지금의 듀랑고는 생존 게이지를 피로도로 단순화하고 처음 기획한 모델처럼 완전한 자유도를 보장하진 않지만 주변 자원을 활용한 조립의 생산성을 끌어올려 이용자 친화적으로 게임을 바꾼 것이다. 완전한 자유도를 꿈꿨지만 현실적인 문제와 어느 정도 타협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양 디렉터는 게임을 혼자 즐기는 솔로 플레이어들에게 동기부여하기가 쉽지 않았던 점도 떠올렸다. 회사는 협업 플레이를 원했지만 신규 이용자들은 대체로 솔로 플레이를 즐겼다. 이들의 경우 게임의 진행이 막히면 곧바로 이탈하는 경우가 보고됐다.
해결책은 ‘일직선의 가이드 도입’이었다. 퀘스트 진행 모델을 어느 정도 채용한 것이다. 가이드를 도입하자 게임 플레이의 동기부여가 이뤄져 호응이 있었다. 오히려 가이드가 끝나자 갑자기 할 게 없어졌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섬의 자원분포를 감안해 절차적 퀘스트 발생 모델을 넣었다. 무전기를 통한 단체 임무부여도 적용했다. 양 디렉터는 “결국 NPC(게임 내 보조캐릭터)와 퀘스트에 해당하는 것을 도입했다”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퀘스트라는 장치가 다른 게임에서 왜 그렇게 도입하고 동기부여가 되는지 그 위력을 재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 디렉터는 다소 불가능할 것은 듀랑고 게임 모델을 완성시키고 성공적인 출시를 이뤄낸 요인으로 ‘생산적인 토론문화’를 꼽기도 했다.
그는 “디렉터에 반론할 수 있는 분위기, 자신의 시각을 내세울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며 “토론을 중재하고 정리하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다수결 프로세스의 유혹이 들지만 좋은 방식은 아니다”면서 “토론 끝에 디렉터가 결정하고 그 방향으로 개발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