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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 SK, ‘벼랑끝 공방전’…양측, 실익있나?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2500억원 규모의 차세대시스템 우선협상 결렬을 놓고 발주사인 교보생명과 우션협상대상자인 SK(주) C&C(이하 SK)간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진실공방’ 구도로 이번 사안의 프레임이 잡히면서 양측은 스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결과에 따라 각각의 분야에서 선도기업의 위치에 있는 당사자들에겐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교보생명이 ‘기술미흡’을 이유로 협상 결렬을 통보하자 이에 SK가 ‘말도 안되는 생트집’이라며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이야 흥미롭지만 문제는 당사자들이다. 자칫 양쪽 다 ‘상처뿐인 영광’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때문이다.

◆법정 공방 현실화, 교보생명에겐 최악의 시나리오 = 먼저, SK가 교보생명을 상대로 가처분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를 가정해보자.

앞서 교보생명은 이번 차세대 프로젝트를 위해 2015년말로 만료가 예정됐던 IBM과의 IT아웃소싱 계약을 3년간 더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이 정해놓은 차세대 프로젝트 구축 예정 기간은 약 30개월이다. 사실 올해 1분기에 프로젝트에 착수했어야 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IBM과의 연장 계약 만기를 고려했을때 몇개월 여유가 남아 있다.

하지만 만약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지리한 법적 공방이 진행되면 프로젝트 일정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차세대시스템 오픈이 늦어질 경우, 교보생명은 IBM과 다시 연장 협상을 해야하는데, 이렇게 되면 막대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

물론 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긴하지만 정말로 이것이 현실화되면, 엉뚱하게도 IBM이 미소짓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이는 SK가 당초 원했던 범위에서도 크게 벗어난 결과다.

◆SK, 전략적 선택 고민= 한편으론 SK 입장에선 우선협상과정에서의 경위가 어떻든 교보생명에 미련을 버리는 것이 더 현명할 지 모른다.

오히려 이것이 SK에게는 훨씬 더 전략적인 선택일 수 있다. SK로서는 LG CNS가 향후 2년간 교보생명 차세대 프로젝트에 전력을 쏟게하도록 하고 그대신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앞으로 산업은행 차세대 프로젝트를 비롯해 IT통합이 곧 완료된 이후의 KEB하나은행, 그리고 KB국민은행 등 앞으로 쏟아지게될 대형 2기 차세대시스템 사업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

설령 SK가 소송을 통해 교보생명 차세대사업을 극적으로 다시 가져온다 하더라도 어차피 양측간의 감정이 상할대로 상했기때문에 프로젝트가 순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SK가 명예회복을 원하다면 이를 해소할 있는 방법은 소송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좀 논의에서 벗어난 얘기지만, 현재 국내 금융SI (시스템통합)시장은 독특한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3년 삼성SDS가 금융SI 시장에서 철수한 후, 차세대시스템과 같은 대형 시장은 사실상 SK와 LG CNS가 양분하고 있다. 이런 시장 구도가 SK에게는 편안한 선택이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배경이다.

◆"양측 주장, 검증 어렵지 않다" = 이번 사태를 지켜본 전직 은행 CIO출신의 A씨는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개발방법론 문제때문에 이렇게 까지 상황이 격화되는게 좀 이해가 가지않는 측면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교보생명과 SK, 양측이 서로 주장하는 내용이 완전히 다른데, 이런 경우는 당장이라도 검증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금융 IT분야에서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 대략 판단이 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논란이 됐던것은 개발방법론이다.

SK측은 ‘교보생명이 우선협상 과정에서 뜬금없이 LG CNS가 보유한 MDD개발방법론을 적용할 것을 요구하면서 사실상 협상이 불가능하도록 했다’는 주장이고, 반면 교보생명측은 ‘MDD 개발방법론을 SK가 먼저 하겠다고 얘기했고 검증과정에서 이를 충족시키지 못해 협상 결렬을 통보했다’고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검증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교보생명 차세대시스템 준비 실무단과 SK간에 주고받는 이메일 등 업무진행 과정에서 오갔던 내용들을 보면 공개하면된다.

또 지난해 11월말, REP(제안요청서)에서 교보생명측은 입찰에 참여한 IT업체들에게 상세한 ‘최적의 개발방법론’을 포함한 상세한 개발방법론을 제시할 것으로 요구한 바 있다.

따라서 SK가 제출한 프로젝트 제안서 내용을 공개하면 공방은 즉시 해결될 수 있다. 만약 SK가 제출한 제안서에 MDD 개발방법론을 적용하겠다는 별도로 언급이 없었다면 이는 차후 우선협상 과정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얘기가 된다.

◆“후진적인 수발주관행 개선돼야” 금융IT업계 쓴소리 = 하지만 전직 은행 CIO인 A씨는 “(이렇게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이는 의미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선협상대상자가 발주자측과 공방을 벌여봤자 결과적으로 실익이 없기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금융 IT사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후진적 계약관행을 혁신적으로 개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A씨는 조언했다.

지난 3월, 우여곡절끝에 우리은행은 28개월간의 일정으로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우리은행의 차세대 프로젝트도 교보생명의 규모와 엇비슷하다.

하지만 앞서 우선협상 과정에서 주사업자와 컨소시엄을 맺고 입찰에 파트너로 참여했던 몇몇 솔루션 업체들이 우리은행측의 요구에 따라 다른 업체들로 교체됐다. 교체된 업체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시작됐고, 반발도 이내 조용해 졌다.

물론 이는 업체들의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해 볼 도리가 없기때문이다. ‘기술력 미흡’은 어떻게 보면 ‘치명적인 이유’같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자의적인 기준’이 된다.

이처럼 발주사가 우선협상단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우선협상대상자의 불안하고 모호한 지위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더 따지고 들어가면, 이는 국내 IT프로젝트 계약 프로세스의 불투명성과 후진성에 기인한다. 갑질 논란이 비일비재한 이유도 역시 이러한 수발주 관행의 취약성에서 출발한다.

어쨌든 이번 교보생명과 SK 양측은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하는지, 그리고 싸움의 결과가 가져다 줄 실익, 나아가 그것을 넘어 보다 양사가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할 시간이다.

<박기록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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